글 자 : 楚(가시나무 초/ 나라 초) 妃(왕비 비) 守(지킬 수) 符(부신, 부절 부)
출 전 : 유향(劉向)의 열녀전(烈女傳) 권(卷)4 정순전(貞順傳)
비 유 : 명분에 사로잡혀 실(實)을 잃음과, 약속을 소중하게 여기는 여인상(女人像)
본 고사성어는 일명 초소정강(楚昭貞姜)이라고도 한다. 곧 초(楚)나라 소왕(昭王)의 부인 정강(貞姜)을 이르는 말이다. 정강(貞姜)은 제(齊)나라 26대 제후 경공(景公)의 딸로 초(楚)나라 29대 소왕(昭王)의 부인이다.
어느 날 소왕(昭王)이 지방을 순시(巡視)할 때 부인도 함께 갔는데 그 지방에서 부인을 물 위의 누대(樓臺)인 점대(漸臺)에 머물러 있게 하고 그 자리를 떠난 일이 있었다.
그때 갑자기 물이 불어나 위험이 닥치게 되어 왕은 위험에 닥치게 된 부인을 걱정하여 사자(使者)를 보내 부인을 급히 모셔오게 했는데 너무 다급하여 부인과 약속한 대로 사자에게 부절(符節)을 주어 보내야 할 것을 잊어버렸다. 그렇지만 사자는 누대(樓臺)에 이르러 물이 불어나 위태로우니 빨리 나올 것을 청(請)하였다.
부인이 말하길, "왕께서는 나와 약속하길 나를 부르실 때는 반드시 부절(符節)을 대조(對照)해 보고 가기로 하였는데, 지금 사자는 부절을 가져오지 않았으니 저는 감(敢)히 시자를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사자가 말하길 "지금 바야흐로 큰물이 밀려오고 있어 이제 돌아가서 다시 부절을 가지고 오자면 아마도 때가 늦을까 두렵습니다."
부인이 말하길, "제가 들으니 정녀(貞女)의 의(義)는 약속을 어기지 않고, 용감한 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직 한결같이 절의(節義)를 지킬 뿐이라 했으니, 제가 사자를 따라나서면 틀림없이 살 것을 알고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 틀림없이 죽게 되겠지만, 그러나 약속을 어기고 절의를 버리면 비록 삶은 구하겠지만 약속을 어기고 구차하게 살 뿐입니다. 따라서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서 죽는 것만 같지 못할 뿐입니다."
이에 사자는 돌아가서 부절을 가지고 오니 그때는 이미 큰물이 밀어닥쳐 누대(樓臺)는 허물어지고 부인은 급류에 휩쓸려 죽은 뒤였다.
왕이 말하길, "아아! 의(義)를 지키고 절조(節操)로 죽어 구차(苟且)하게 삶을 구하지 않았구나! 신의(信義)로써 굳게 지켜 정절(貞節)을 이루었도다." 이에 그녀를 정강(貞姜)이라 하였다.
이에 군자(君子)가 이르길, "정강(貞姜)은 절조(節操) 있는 부인이다"라고 칭송하였다. 시경(詩經)에는 "훌륭한 군자의 그 거동(擧動)이 틀림이 없네"라고 노래하여 인간의 삶에 약속을 지킴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교훈임을 기리고 있다.
또한, 춘추시대 노(魯)나라에 미생(尾生)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가 있었다. 그는 약속을 중요히 여겨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절대로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애인(愛人)과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던 미생은 평소와 같이 약속시간에 다리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으나 이상하게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고, 많은 비가 왔다. 얼마를 지나자 쏟아지는 비로 인해 다리 밑의 개울은 빠르게 불어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며 피할 것을 적극 권고했으나 그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개울물은 계속 불어났고 더 버틸 수 없는 상황까지 왔지만 미생은 다리 밑을 떠나지 않고 애인을 기다렸고 결국 밀려오는 물속에서 기둥을 끌어안고 죽어버렸다.
이 이야기를 읽고 사람들의 생각은 두 가지 부류로 엇갈린다.
한 부류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약속을 지키고자 하는 굳은 신의를 지킨 훌륭한 사람으로, 다른 한 부류는 융통성 없이 버티다가 어리석게 죽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옛 선현들은 한번 약속은 어떠한 경우를 막론하고 반드시 지켰다. 애초부터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았다. 따라서 약속(約束)은 사회생활에 신용으로 이어지고 사업의 성패를 가늠하는 가장 핵심요소 중 하나가 된다. 약속은 개인의 약속도 중요하지만 특히 공인(公人)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공인과 지도자(指導者)가 약속을 어기면 그 피해는 온 국민의 실망과 허탈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공자는 정치에 가장 중요한 요소를 족식(足食)[경제], 족병(足兵)[국방], 민신지의(民信之矣)[신용]으로 대변하고 그 중 신용을 가장 중요시했다. 곧 국민 서로 간, 지도자와 국민 간 믿음이 없으면(民無信不入/민무신불입) 그 나라의 멸망은 불을 보듯 뻔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근간 대한민국의 사회는 벌써 내년에 있을 대선(大選)의 움직임이 속도를 내고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있으면, 국민들은 공약(公約)의 혼란에 빠지게 된다.
꼭 필요한 약속만 하고,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는 신용 있는 인재를 국민들은 원하고 있다. 공약이 크고 예산이 많이 투입되는 것일수록 국민의 고통은 커져가는 것을 우리는 지난 정권들로부터 경험했다. 따라서 허황된 약속은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먼 곳의 물로 가까운 곳의 불을 끌 수 없다.(遠水不救近火/원수불구근화)라는 고사를 다시 새겨 본다.
장상현/ 인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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