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석 소설가 |
<자화상>이 국민 애송시가 된 건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이 구절 때문 아닐까. 어떤 이에게는 이 바람이 순풍으로 느껴질 것이고, 어떤 이에게는 역풍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정치인에게는 이 바람이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대세론을 띄우는 순풍, 자강론을 내세우지만, 찻잔 속 미풍, 경선 돌풍을 일으키고 싶지만, 코로나 확산에 오히려 역풍을 맞을까 조마조마한 바람일지도….
나는 차기 대권 주자 선호도 1·2위를 달리는 이재명 지사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해 왜 이런 대세론의 순풍이 부는지 궁금했다. 이재명 지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닮은 점이 있다. 흙수저이면서 비주류 정치의 길을 걸어왔다는 점과 '사이다' 발언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말이 톡톡 쏜다. 국민의 귀에 속속 박힌다. 정책도 '기본소득'이란 단 한 문구로 선명하다. 야당이나 민주당 내에서도 '나라 거덜 내는 선심성 복지'라며 비판의 목소리가 높지만, 국민은 솔깃하기만 하다. 엘리트 정치에 늘 당해온 국민은 '너희끼리 해쳐 먹는 것보다 나눠주는 게 더 낫다'는 심정이다.
윤석열 전 총장은 팔할이 문재인 정부가 키워낸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국 사태 때도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았고, 삼성전자 이재용 사장 구속 때도 '이런 사람이 구속되지 않으면 어떻게 경제정의를 말할 수 있느냐'며 정치인도 굽실굽실하는 재벌총수를 구속 수사로 밀어붙였다. 부인과 장모 덕에 재산도 늘고, 그 탓에 구설에 휘말려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정의감' 하나만큼은 인정받는 분위기다.
이런 윤 전 총장도 '국민의 힘' 정당에 들어가는 건 여간 껄끄러운 게 아닐 것이다. 아마 국민의 힘 경선 과정에서 자강론을 내세우는 후보들에게 호되게 공격당하고, 서울시장 경선 때의 안철수 후보처럼 조직의 힘에 밀려날 수도 있다. 그는 중도로의 확장성이 약한 '국민의 힘'에 들어가서 이미지 실추되느니 외연에서 선명한 정책을 들고나와 지지율을 굳히고 싶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선거는 늘 20%의 중도층이 어느 쪽으로 쏠리는가, 가 관건이다. 아니면 참여를 안 하든가.
지금 지지율 반등에 성공한 '국민의힘'은 자강론을 내세우는 후보들이 하나둘 기지개를 켜고 있다. 해쳐 먹든 말든 자신들을 늘 지지해 주는 40%의 콘크리트 보수층이 있는 한 굳이 자강론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하나둘 출마 선언을 해도 찻잔 속에 미풍으로 그치는 것은 국민 정서와 거리감이 있기 때문이다. 이준석 돌풍에서도 알다시피 구시대 정치를 탈피하라는 메시지를 받아도 조직의 힘에 기댄 구태의연한 인물들이 출마하거나 중도로의 확장성은 일도 보이지 않는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도 윤 전 총장이 연말까지 고공 지지율을 가지고 간다면 결국 국민의힘 후보와 불가피하게 여론조사로 결정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민주당은 경선 레이스에 닻을 올렸지만, 순풍이 불어줄 것 같지는 않다. 코로나 확산이라는 역풍이 불고 있고, 지지층 내부의 분열이 과연 경선 레이스가 끝나도 봉합될지 의문이다. 민주당도 40%의 진보세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진보의 특징인 분열정치는 늘 골칫거리다.
정치를 키우는 건 팔할이 바람이다. 가도 가도 부끄러운 세상, 죄인이 되기도 하고, 천치가 되기도 하지만 뉘우쳐본들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신념을 가지고 가는 자만이 결국 결승점에 도달한다. /김재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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