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으로] 정치는 팔할이 바람이다

  • 오피니언
  • 세상속으로

[세상속으로] 정치는 팔할이 바람이다

김재석 소설가

  • 승인 2021-07-12 09:40
  • 신문게재 2021-07-13 18면
  • 김소희 기자김소희 기자
김재석 소설가
김재석 소설가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 서정주 시인 <자화상>

<자화상>이 국민 애송시가 된 건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이 구절 때문 아닐까. 어떤 이에게는 이 바람이 순풍으로 느껴질 것이고, 어떤 이에게는 역풍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정치인에게는 이 바람이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대세론을 띄우는 순풍, 자강론을 내세우지만, 찻잔 속 미풍, 경선 돌풍을 일으키고 싶지만, 코로나 확산에 오히려 역풍을 맞을까 조마조마한 바람일지도….

나는 차기 대권 주자 선호도 1·2위를 달리는 이재명 지사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해 왜 이런 대세론의 순풍이 부는지 궁금했다. 이재명 지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닮은 점이 있다. 흙수저이면서 비주류 정치의 길을 걸어왔다는 점과 '사이다' 발언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말이 톡톡 쏜다. 국민의 귀에 속속 박힌다. 정책도 '기본소득'이란 단 한 문구로 선명하다. 야당이나 민주당 내에서도 '나라 거덜 내는 선심성 복지'라며 비판의 목소리가 높지만, 국민은 솔깃하기만 하다. 엘리트 정치에 늘 당해온 국민은 '너희끼리 해쳐 먹는 것보다 나눠주는 게 더 낫다'는 심정이다.

윤석열 전 총장은 팔할이 문재인 정부가 키워낸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국 사태 때도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았고, 삼성전자 이재용 사장 구속 때도 '이런 사람이 구속되지 않으면 어떻게 경제정의를 말할 수 있느냐'며 정치인도 굽실굽실하는 재벌총수를 구속 수사로 밀어붙였다. 부인과 장모 덕에 재산도 늘고, 그 탓에 구설에 휘말려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정의감' 하나만큼은 인정받는 분위기다.



이런 윤 전 총장도 '국민의 힘' 정당에 들어가는 건 여간 껄끄러운 게 아닐 것이다. 아마 국민의 힘 경선 과정에서 자강론을 내세우는 후보들에게 호되게 공격당하고, 서울시장 경선 때의 안철수 후보처럼 조직의 힘에 밀려날 수도 있다. 그는 중도로의 확장성이 약한 '국민의 힘'에 들어가서 이미지 실추되느니 외연에서 선명한 정책을 들고나와 지지율을 굳히고 싶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선거는 늘 20%의 중도층이 어느 쪽으로 쏠리는가, 가 관건이다. 아니면 참여를 안 하든가.

지금 지지율 반등에 성공한 '국민의힘'은 자강론을 내세우는 후보들이 하나둘 기지개를 켜고 있다. 해쳐 먹든 말든 자신들을 늘 지지해 주는 40%의 콘크리트 보수층이 있는 한 굳이 자강론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하나둘 출마 선언을 해도 찻잔 속에 미풍으로 그치는 것은 국민 정서와 거리감이 있기 때문이다. 이준석 돌풍에서도 알다시피 구시대 정치를 탈피하라는 메시지를 받아도 조직의 힘에 기댄 구태의연한 인물들이 출마하거나 중도로의 확장성은 일도 보이지 않는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도 윤 전 총장이 연말까지 고공 지지율을 가지고 간다면 결국 국민의힘 후보와 불가피하게 여론조사로 결정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민주당은 경선 레이스에 닻을 올렸지만, 순풍이 불어줄 것 같지는 않다. 코로나 확산이라는 역풍이 불고 있고, 지지층 내부의 분열이 과연 경선 레이스가 끝나도 봉합될지 의문이다. 민주당도 40%의 진보세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진보의 특징인 분열정치는 늘 골칫거리다.

정치를 키우는 건 팔할이 바람이다. 가도 가도 부끄러운 세상, 죄인이 되기도 하고, 천치가 되기도 하지만 뉘우쳐본들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신념을 가지고 가는 자만이 결국 결승점에 도달한다. /김재석 소설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고교 당일 급식파업에 학생 단축수업 '파장'
  2. 대전 오월드서 에어컨 실외기 설치 작업자 추락해 사망
  3. 열악했던 대전 여성노숙인 쉼터…지원 손길로 '확 달라졌다'
  4. "뿌리부터 첨단산업까지… 지역과 함께 혁신·성장하는 대학"
  5. 대전 중구 교육부 평생학습도시 신규 선정 '중구가 대학, 온마을이 캠퍼스'
  1. 대전교사들 "학교 CCTV 의무화, 사건 예방에 도움 안돼" 의무화 입법에 반발
  2. 계룡산성 道지정문화재 등록 5년째 '보류'…성벽과 기와 무너지고 흩어져
  3. 대전 금고동 주민들 "매립장·하수처리 공사장 먼지에 농사 망칠판" 호소
  4. 사랑의 재활용 나눔장터 ‘북적북적’
  5.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헤드라인 뉴스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탄핵정국 속 두 쪽으로 갈라진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고 민주주의가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4·2 재보궐선거 본 투표 당일인 2일 시의원을 뽑는 대전 유성구 주민에게선 사뭇 비장함이 느껴졌다. '민주주의의 꽃' 선거를 통해 주권재민(主權在民) 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발현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저마다 투표소로 향한 것이다. 오전 10시에 방문한 유성구제2선거구의 온천2동 제6투표소 대전어은중학교는 다소 한산한 풍경이었다. 투표 시작 후 4시간이 흘렀지만 누적 투표수는 고작 200표 남짓에 불과했다. 낮은 투표율을 짐..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국내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이 약 9500여 만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40대 차주의 평균 대출 잔액은 1억 1073만 원으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이 한국은행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은 9553만 원으로 조사됐다. 이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지난 2012년 이후 역대 최고 수준이다. 1인당 대출 잔액은 지난 2023년 2분기 말(9332만 원) 이후 6분기 연속 증가했다. 1년 전인 2..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숨겨진 명곡이 재조명 받는다. 1990년대 옷 스타일도 다시금 유행이 돌아오기도 한다. 이를 이른바 '역주행'이라 한다. 단순히 음악과 옷에 국한되지 않는다. 상권은 침체된 분위기를 되살려 재차 살아난다. 신규 분양이 되며 세대 수 상승에 인구가 늘기도 하고, 옛 정취와 향수가 소비자를 끌어모으기도 한다. 원도심과 신도시 경계를 가리지 않는다. 다시금 상권이 살아나는 기미를 보이는 역주행 상권이 지역에서 다시금 뜨고 있다. 여러 업종이 새롭게 생기고, 뒤섞여 소비자를 불러 모으며 재차 발전한다. 이미 유명한 상권은 자영업자에게 비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 한산한 투표소 한산한 투표소

  •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