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환 법무법인 지원 P&P 대표변호사 |
여름 장마철이기도 한 이 시기, 소서가 시작되면 하지 무렵 끝낸 모내기의 모들이 뿌리를 내려 논매기를 했다. 농가에선 논둑이나 밭두렁에 풀을 베어 농작물에 영양을 주는 퇴비를 장만했다.
가을보리를 베어낸 자리에는 콩이나 팥, 조 등의 농작물을 심어 이모작을 했다. 또한 이때는 과일과 채소가 풍요를 이루어 제철채소인 오이, 애호박, 감자 등과 많이 자라나 영양가가 풍부해진 다슬기들을 잡아 요리하여 먹었다. 제철과일인 자두, 토마토, 수박, 참외 등을 함께 챙겨먹으면서 더위를 식혔다고 한다.
과거엔 음력 6월 16일을 전후로 밀과 보리를 많이 수확하기도 해서 국수나 수제비와 같이 밀가루로 만든 음식을 자주 즐겨먹기도 했다.
해마다 겪는 더위임에도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 현실에 더하여 부친의 입원으로 갑작스레 주인을 잃은 논과 밭을 살피기 위한 주말마다의 아산행은 평상시와는 달리 보다 색다른 마음을 갖게 한다.
항상 생각을 정리하거나 머리를 식힐 일이 있으면 의례적으로 시골주막의 손처럼 훌쩍 왔다가 다시 도시로 돌아가곤 하는 휴식처가 시골의 본가였다면, 지금은 가장의 부재하에 주인의 손을 기다리는 농작물들과 동물들을 돌아보기 위해 어떤 임시 가장으로의 책무를 가지고 온다는 점이 큰 차이점이라 할 것이다.
시골의 본가는 대학교 입학 후 처음으로 한 타지생활부터 한 가정의 가장이자 사무실을 이끄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노곤한 몸과 멍해진 마음을 달래러 왔던 휴식처였던 것 같다. 단지 집근처를 한 바퀴 돌았을 뿐인데 손이 빈자리가 눈에 띈다. 삐죽이 뻗어 있어 관리 받지 않음을 뽐내는 사철나무 울타리를 원예용가위로 정리해주고 나면 마당에 심긴 나무 밑의 이름 모를 잡초들이 담뿍 웃으며 쳐다보고 있다.
다시 마음의 여유를 갖고자 천천히 개울가를 걷던 중 이번엔 논둑위의 잡초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침에 선선할 때 움직일 것을 후회하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예초기를 어깨에 걸쳐 멘다.
정오의 햇볕은 따갑기만 하다 열을 식히고자 잠시 앉은 논둑에서 파스라이 익어가고 있는 벼들이 보인다. 잠시 지나가는 산들바람에 파도처럼 연신 고개를 저어가며 움직이는 벼들을 보며 잠시 상념에 잠긴다.
저런 산들바람에 흔들거리는 연습을 해야 한참 이삭이 달린 이후 더 큰 바람이 왔을 때도 바람을 피하며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단순한 주변 사물의 움직임들에서도 다들 의미가 있을 진데 이런 자연물들이 사람에 의해 미물로 비유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예초기를 창고에 넣고 나오는데 토끼가 보인다. 민들레 잎이라도 줘야 하나 고민하며 나오던 중 10년 넘게 집을 지키고 있는 대식이가 꼬리를 흔들며 물과 사료를 내놓으라고 보챈다. 사료를 주고 오는 길에 아직 봉지를 씌우지 않은 과수원의 배들이 군데군데 보인다.
이래서 농군의 하루는 길다고 하는 구나. 눈을 돌릴 때 마다 결재판을 들고 결재를 기다리는 직원처럼 자연만물이 나를 쳐다본다. 어지러운 상황을 뒤로하고 이제 눈을 감으며 나지막히 중얼거리며 기도한다. 아버지 빨리 퇴원하소서!
박철환 법무법인 지원 P&P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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