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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고 찌고 굽고 으깨고 조리고 썰고 튀기는 감자. 맛과 요리법이 이만큼 다채로운 채소가 있을까. 하지만 손으로 몇 번 주무르다 던져 놓은 것처럼 울퉁불퉁하고 못생긴 감자의 운명은 순탄치 않았다. 처음 신대륙에서 건너온 감자는 유럽인들로부터 한참동안 천대받았다. 그러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파티장에 머리에 감자꽃을 꽂고 나오자 감자에 대한 유럽인의 태도가 한순간에 바뀌었다. 왕비를 밥 먹듯 갈아치운 헨리 8세는 심지어 감자를 취음제로 여겼다고 한다.
감자는 척박한 토지에서도 잘 자란다. 그래서 흔하디 흔하다. 어릴 적 여름에 우리집 밥상 위엔 늘 감자조림이 있었다. 알이 작은 감자와 메주콩을 간장에 졸인 것인데 하도 먹어서 질리기 일쑤였다. 도시락 반찬도 걸핏하면 감자조림이었다. 엄마에게 투정을 부려 보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빨간 소시지에 계란 옷을 입혀 노릇노릇하게 부쳐 싸온 짝꿍의 근사한 도시락이 부럽기만 했다. 지금은 보기 힘들지만 그땐 토종 감자인 자주감자가 많았다. 진한 보라색에 눈이 쏙쏙 들어가 야무지게 생긴 감자였다. 맛도 보통이 아니었다. 쪄서 먹을라치면 아린 맛에 입안이 얼얼했다. 그 시절 먹었던 알싸한 감자는 다 어디로 갔을까.
'지슬'은 제주도에서 감자의 다른 이름이다. 2013년 개봉한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다. 영화 '지슬'은 제주 4.3 항쟁을 다뤘다. 해방 후 한반도는 이념이 극에 달하던 시대였다. 이념은 권력자들의 탐욕을 채우는 수단이었다. 탐욕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세계에서 죽이는 자와 죽임을 당하는 자의 경계는 분명해진다. 학살의 대상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영화에서 지슬은 살육을 피해 동굴로 숨어든 마을 사람들의 목숨을 연명해주는 중요한 먹거리였다.
땡볕이 내리쬐던 휴일 어느 날, 산내 골령골을 찾았다.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 깊은 골에 다다랐다. 마침 유해 발굴 작업이 한창이었다. 단단한 흙더미 속에 뼈들이 삐죽이 보였다. 흡사 시루떡처럼 길쭉한 뼈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멀리서 산까마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빨갛게 익은 핏빛의 열매를 맺은 보리수나무는 그날의 비극을 아는 지 모르는 지 바람에 무성한 잎새만 살랑였다. "핏물이 개울을 타고 흘러 내렸어. 이듬해 밭에 심은 감자, 고구마, 옥수수 같은 게 얼마나 실하던지. 죽은 사람들이 썩어 거름이 됐던 모양이여." 80이 훌쩍 넘은 동네 할아버지가 나직이 들려줬다. 『순이 삼촌』네 밭 감자도 목침 덩어리만큼 큼지막했다지 않은가. 궁핍한 이들을 먹여 살리는 감자. 6월이 오면 들판을 시퍼렇게 물들이며 서러움을 토해내는 감자. 정 많은 후배 기자 임병안의 감자 한 아름도 있다. 감자는 인간에게 어떤 존재일까. '당신과 나의 뜨거운 감자'. <제2 사회부장 겸 교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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