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용 대표변호사 |
우리의 어벤져스가 목숨까지 바쳐가며 싸우는 이유는 타노스가 인류의 절반을 소멸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절반을 무작위로 없애버리겠다는 '악의 화신'을 응징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반면 악당에게는 그렇게 설득력 있는 이유가 없다. 어차피 악당의 존재 이유는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어쨌든 악당은 타도해야 하고 그래야 영화가 흥행한다.
검찰에 관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의외로 많은 사람이 검찰을 타노스 같은 악당으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검찰이라는 이 악당은 구체적인 이유나 방법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대한민국을 자기 손안에 넣으려고 한다. '무소불위'라는 마치 '인피니티 스톤'같은 강력한 힘으로 검찰에 대항하는 존재들을 가볍게 박살 낸다. 국민은 이 무시무시한 악당을 물리치고 대한민국을 구해줄 어벤져스가 나타나 주길 손에 땀을 쥐며 기다린다. 이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벌써 2편까지 개봉했는데, 제목은 검찰개혁 시즌1, 검찰개혁 시즌2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 얘기에서도 악당들인 검사들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이는 별로 없다. 무슨 말을 해도 '밥그릇 싸움'이라는 간단한 단어로 무시당하는 일이 다반사다. 정작 검사들은 '나라에서 꼬박꼬박 월급 주는데 무슨 밥그릇?!'이라며 황당해 하지만 어디 악당들의 이유가 중요한 적이 있던가.
소위 검찰개혁 시즌1이라는 공수처 설치와 검경수사권 조정 당시 검사들은 내부 게시판을 통해 꽤 활발하게 의견을 제시했다. 특히 검사들이 많은 의견을 냈던 부분은 검경수사권 조정에 대해서였다. 다수의 검사는 검찰의 직접수사 권한을 없애고 경찰의 수사를 통제하는 인권보호기관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고 지지를 보냈다. 검찰보다 더 권력자들의 영향력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경찰조직에 대한 우려는 당연한 것이었다.
검사들은 어떻게 하면 정치권의 영향에서 벗어나 공정하게 검찰권을 행사할 수 있을지, 혹여나 경찰의 수사 권한이 남용되거나 부당하게 행사할 때 이를 견제할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해 나름의 고민을 거듭하고 토론하며 합리적 개혁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시즌1의 결말을 공개했을 때 이런 검사들의 열정은 차갑게 식었다. 문제점으로 지적했던 형사사법 시스템의 구조적인 해결책은 전혀 없었다. 권한 가르기 식의 수사권 조정은 국민 입장에서 절차만 복잡해지고 난해해졌을 뿐이다. 기존에는 암암리에 아닌 척이라도 했던 정치 편향 따위는 이제는 당연하고 합당한 일처럼 돼버렸다.
지난 몇 년간 뉴스에서 검찰개혁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지만 정말 개혁은 이루어졌을까. 과연 개혁이라는 것들을 통해 이익을 얻은 이들은 누구일까. 검찰개혁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마치 검찰이 독자적인 유기체로서 타도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엄밀히 검찰제도는 국가 형사 사법체계의 일부이며 이러한 사법체계 자체가 개혁의 대상이다. 체계의 구조 설계는 입법자를 비롯한 위정자들의 몫이다. 문제가 있다면 그 책임을 져야 할 자들이 오히려 악당이 나타났다고 소리치며 영웅 행세를 하는 것은 어딘가 누추하지 않은가. 진짜 문제는 숨긴 채 악당을 내세우며 그들과 싸우는 것 같은 연기로 오로지 흥행에만 신경 쓰는 자들이 있지 않은지 경계하며 지켜볼 일이다.
현재 진행 중이라는 시즌2는 코믹물을 예상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의도가 뻔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이 개그의 본질이다. 재미있고 알찬 시즌2를 기대해 본다.
법무법인 윈 신기용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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