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자 : 南(남녘 남) 橘(귤나무 귤) 北(북녘 북) 枳(탱자나무 지)로 만들어 졌다.
본 고사의 출처는 안자춘추(晏子春秋)에서 볼 수 있다.
비유로는 환경이나 문화가 달라지면 사람의 언행이나 사고방식도 다를 수 있다.
춘추시대(春秋時代)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명재상 관중(管仲)의 보좌로 제후국의 패자(覇者)가 된 후 약 백 년이 지나 안영(晏?)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등장했다. 그는 작은 키(약140센티)에 총명하고, 탁월한 재능의 소유자였으며 청렴결백하여 재상이 된 뒤에도 밥상에 고기반찬을 올리지 않고, 아내가 비단옷 입는 것을 금지하였다. 그리고 조정에 들어가서는 품행을 조심하고, 군주에게는 기탄없이 간언(諫言)을 드렸다.
당시 제(齊)나라와 초(楚)나라는 강대국이었으며 서로를 견제하는 입장에 있었다.
어느 날 두 나라가 화평(和平) 문제로 제나라에서 초나라로 사신이 가게 되었고, 제나라에서는 재상인 안영을 사신으로 보내게 되었다.
한편 초나라 왕은 제나라 사신의 기를 죽여 외교권을 선점하기 위해 안영을 골탕 먹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안영이 도대체 어떻게 생긴 인물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제나라 돌아가는 정세를 파악하고 싶기도 했다. 드디어 사신은 도착하였고, 초나라 왕은 제나라 사신인 안영의 인사를 받고나서 그의 키가 무척 작은 것을 보고 멸시하는 태도로 시비를 걸었다.
초왕이 "제나라에는 쓸만한 인물이 없는 모양이지요?" 그러자 안영은 "천만에요. 인물이 넘쳐나 누구를 대신(大臣)자리에 앉힐까 임금이 고민하실 정도입니다." 초 왕이 "그렇다면 왜 당신과 같은 키가 작은 사신을 보냈는지 모르겠소!" 초 왕은 키가 5척(150cm 내외)도 안 되는 안영을 내려다보며 이죽거렸다. 그러자 안영은 고개를 바짝 치켜들고 초왕에게 태연하게 응수했다.
"저희 제나라에는 다른 나라에 사신을 보낼 때 꼭 지키는 법도가 있사옵니다. 그건 다름 아닌 사신이 가는 나라의 크기에 따라 사람을 골라 보내지요. 작은 나라는 키가 작은 사신을 보내고, 큰 나라에는 키가 큰 사신을 보냅니다. 물론 저는 대신들 중에서 키가 가장 작아 초나라에 뽑혀 왔습니다."
안영의 답변에 그만 초왕의 입이 떡 벌어지고 기가 막혔다. 그리고 초왕은 안영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 구실을 찾기 위해 그를 대궐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그 때 초왕 일행이 저자거리를 지나는데 못 보던 옷차림을 한 사내가 오랏줄에 손이 묶인 채 질질 끌려가는 게 아닌가? 초왕은 포졸을 급히 불러 세웠다.
"여봐라! 무슨 죄를 지었기에 사람을 포박해서 개 끌듯 끌고 가느냐?"
관리가 말하길 "전하, 이놈은 남의 집을 제 집 드나들 듯하면서 물건을 마구 훔친 절도 죄인입니다."
그러자 초 왕이 "그래? 그런데 죄인의 옷을 보니 초나라 사람이 아닌 거 같은데!"
"예, 제나라에서 온 사람입니다." 그러자 초왕이 "그럼 그렇지!"하며 이번에는 안영의 기를 꺾을 좋은 구실이 생겨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초왕은 안영을 보면서 "제나라에는 남의 재물을 함부로 훔치는 도둑들이 득실거리는 모양지요?"라고 하자 안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훈계하듯이 초왕에게 말했다.
"보아하니 초나라는 왕실에서부터 저자 사람들까지 살진 돼지처럼 먹고 마시고 즐기는 일에만 열중할 뿐 책을 안 읽는 거 같아 앞날이 심히 걱정스럽습니다"라고 하자 초왕은 "그런 걱정은 없소이다!" 초왕은 기분이 나쁜지 안영에게 쏘아붙였다.
그러자 안영은 "전하께서는 남귤북지(南橘北枳)를 잘 모르시는 것 같아 감히 드린 말씀입니다." 이에 초왕은 답변이 궁해 헛기침을 몇 번하다가. "그건 당연하지요!"하고 초왕은 얼떨결에 안영의 말에 맞장구를 치고 말았다.
그러자 안영은 천천히 초왕에게 "전하, 강남에 귤이 있는데 그것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되고 마는 것은 토질 때문입니다. 저 사람도 제나라에서 살 때는 착했으나 여기 와서 초나라의 나쁜 풍토에 물들어 도둑질을 배운 게 틀림없습니다."
안영의 반격에 초왕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초왕은 안영과 더 이상 대적해 봐야 본전도 못 찾을 거 같아 그만 화해(和解)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소문대로 그대의 재치 넘치는 언변과 지략(智略)에 경탄을 금할 수 없소이다. 우리 그만하고 대궐에 돌아가 대취하도록 술이나 마십시다."
그리하여 초왕은 안영을 만나본 뒤로 제나라를 함부로 넘보지 않았다고 한다.
이쯤에서 우리는 현실을 상찰(詳察)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많은 국민들이 가장 궁금해 하고 이해 할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권력을 잡고 대궐(靑臺)만 들어가기만 하면 남을 멸시하고, 절대 권력자로 둔갑하여 국민은 안중에 없고 이른바 황제역할을 한다, 또한 평소에는 더 없이 온순하던 사람도 여의도(國會)에만 들어가면 비겁할 정도로 강(强)한 자에게는 한없이 약(弱)하고, 약한 자에게는 한없이 강해진다.
이러한 현상도 대궐과 여의도가 강북에 있기 때문에 남귤북지가 되어버린 것인가?
이는 자기를 지켜주는 주인에게는 참으로 충직한 개가 타인에게는 무서운 맹견이 되는 것과 같다. 이것은 의지가 덜 발달된 인간일수록 권위에 복종하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자기의 약점을 감추고 위기를 지키려고 한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자기주장이나 철학이 확고한 사람은 비겁하지 않다. 과거의 충신들과 의사(義士) 열사(烈士)들은 그렇지 않았다. 항상 소신도 없고 비겁한 자들에게서 이런 현상을 볼 수 있다.
靡辭無忠誠, 華繁竟不實(미사무충성 화번경부실) / 말이 유창하면 충성이 없고, 꽃이 화려하면 열매가 없다.
후한 시대 孔融의 '臨終詩'에서 볼 수 있다.
낯간지러운 아첨과 아양 뒤에는 반드시 거짓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혹 코로나 재난지원금도 뒤에 있을 어떤 큰일(大事)을 속이려는 국민에 대한 아양은 아닐까?
장상현/ 인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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