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복섭 교수 |
여러 곳에서 진단과 걱정의 목소리가 크게 들리지만 정작 대책과 관련해서는 원론적이거나 현실성이 낮은 대안들로 점철된다. 수도권 대학의 정원을 목 조여 어쩔 수 없이 지방으로 내려가게 하자는 의견도 그렇고, 미달하는 인원을 외국인 유학생으로 벌충하자는 얘기도 그렇다. 수도권 대학들의 반대가 불을 보듯 뻔하고, 교육 선택권을 제한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하냐는 주장에 선뜻 대꾸가 쉽지 않다. 외국인 유학생은 이미 정점을 찍고 내려가는 추세고, 유학 조건의 빗장을 맘껏 열어젖힌 상태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도 고려해봐야 한다. 장기적으로 지방을 발전시켜 대학도 살리자는 주장은 공감이 가지만 멀게만 느껴지는 게 현실이다.
결국, 답은 대학시스템을 혁신하는 일뿐이다. 우선, 사회적 수요에 부응하여 활발한 내적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대학이 더는 상아탑이 될 수 없다는 인식과 함께, 학문 분야별로 합종연횡을 거듭하여 융합과 새로운 영역 개척이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대개 통합을 얘기할 때 총론적이고 가시적인 물리적 결합을 결과물로 제시하지만, 실제로 내부적으로는 각론적인 화학적 통합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 그간의 상황이었다. 꾸준한 토론과 합의를 통해서 사회적 변화를 반영하는 수요자 중심의 경쟁력 있는 교육콘텐츠가 지속해서 만들어지는 구조로 혁신이 이루어져야 한다. 혁신은 내부로부터 상향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대학은 그 과정을 고무하고 지원해야 한다.
구체적이고 실험적인 방법으로 지방 권역별 공유대학 또는 연합대학 체제를 상정할 수 있다. 교양과정을 통합하여 운영하거나 전공과정을 연합체제로 꾸리는 일이다. 이미 우리 지역에서는 몇몇 대학들이 모여 가칭 세종공유대학 모델을 천명했다. 현재는 AI와 ICT 중심 공동학위제 운영이 협약에 담긴 정도이나, 다른 학문 분야별로도 현실 가능하고 구체적인 제안들이 쏟아져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예를 들어 보자. 건축학과는 세계적 기준에 맞춘다는 이유로 2000년대 초 5년제로 전환했다. 이십여 년이 흐른 지금 교육의 질이 나아졌다는 의견도 있지만, 부정적 평가도 만만치 않다. 정작 일 년을 더 공부했는데 그만한 대우를 직장에서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점과 설계교육에만 집중한 나머지 건축가가 지녀야 하는 기술분야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전과나 편입이 어려운 것도 문제다. 건축가가 되고자 입학했으나 디자이너로서의 기질보다는 엔지니어 적성을 확인하고 방향을 전환하는 일이나, 엔지니어가 되고자 진학했으나 설계하는 일이 더 즐거워 건축가가 되고자 하는 일이 인증기준 불일치로 인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각 대학의 건축학과는 대부분 소수의 정원으로 꾸려져 상당수의 설계수업을 외래강사에 의존하는 실정이고, 인증기준에 맞춘다는 이유로 다른 학과들에 비해 공간을 많이 사용한다는 학교경영 관점의 불만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각 대학이 4년제 교육과정을 건축공학과와 공통으로 운영하고, 설계자격을 위한 특별과정은 지역대학들이 공동으로 연합대학원 체제를 만들어 운영하는 모델을 제안한다. 각 대학으로부터 차출된 교수 수가 풍부하다 보니 전문분야별 특성에 맞는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고, 공간과 시설도 경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며, 4년 동안 건축을 공부하면서 설계분야에 대한 적성과 능력이 검증된 학생들이 진학함에 따라 학구열과 전문성도 배가될 것이다. 수도권과 달리 지방의 경우는 개별 대학이 전문대학원을 운영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연합대학원이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있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는 속담이 있다. 위기를 기회로 느낄 때 생존을 위한 다양한 창의적 아이디어가 등장한다. 이 시기 지방대는 분명 위기의 국면으로 돌입하고 있지만, 냉철한 현실 인식과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혁신을 넘어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작용할 것이다. /송복섭 한밭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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