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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식 한양대 특임교수 |
하지만 최근의 뉴스 보도내용은 상식과 통념을 한참이나 벗어나고 있다. 우리 사회를 이렇게 만든 주된 이유는 사람을 목적으로 대하지 않고 수단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라는 칸트(Immanuel Kant)의 외침이 강한 울림으로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는 지속 가능할까? 우리 사회를 사람이 살만한 바람직한 세상으로 만드는 방법은 없을까? 인류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공동체가 지속할 수 있었던 배경과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은 장구한 역사를 통해 기존의 사유방식으로는 세계와 문명의 존재 이유와 당위성을 설명하지 못하거나, 혼란과 무질서가 도를 넘어 기존 체제로는 감당할 수 없게 되면 새로운 사유체제를 도입하여 관점을 바꾸고 정신구조와 행동체계를 변형시켜왔다. 새로운 사고와 체계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세계와 문명은 위축되거나 붕괴하기가 십상이고 역사 속에서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 되었다.
우리 사회가 이만큼이라도 지속할 수 있었고 성숙한 사회로 진화할 수 있던 이면에는 각각의 당위성과 필연성을 갖춘 다수의 세계관이 존재하겠지만, 한국 사회의 경우는 충청도 양반의 역할도 한몫하고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충청도 양반은 충청도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지칭하거나 충청도 지역 주민들이 보여주는 사회적, 경제적 정신적이며 신체적, 문화적 특성을 일컫는 다의적 개념이다. 동시에 충청도 양반 관련하여 내부인은 물론 외부인까지도 인정하고 설명과 예측할 충청도만의 독특한 행동 규범과 지향가치를 지칭하기도 한다. 그것은 은연중에 형성된 유무형의 차별화된 특징으로서 지역을 벗어나고 시간이 흘러도 다수의 동의와 인정을 받는 충청도의 상징과 이미지이며 정체성이기도 하다.
충청도 양반 관련 다수의 견해는 대체로 세상사에 둔감하며, 눈앞의 이익보다는 모호하지만, 인간의 도리를 다하려다 때로는 손해를 자청하거니 고난을 감수하는 약빠르지 못한 우직한 바보의 이미지가 강한 것으로 이해하는 분들이 많다. 충청도 양반은 아무리 추워도 곁불은 쐬지 않으며 감정이나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곁불을 쬐지 않는 자존심과 결기를 지닌 선비의 전형으로 임금에게도 바른말을 직언하여 사약을 받기도 하고, 국가 위기 시에는 명분을 따라 일신의 안위를 도외시하고 고난을 자초하는 멸사봉공의 선봉이 되기도 하였다. 매사에 신중하며 속내를 모른다는 평가도 있으나 과거로부터 충청도가 가진 지리적 공간적 특성 때문으로 어쩔 수 없는 행태임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즉 생사결정권을 가진 절대적 지배자가 자주 바뀌던 삼국시대의 고구려와 백제, 신라경계에 속하던 충청도인들은 목숨 부지를 위하여 불가피하게 선택해야 했던 본능적 처세술이 신중함으로 대물림되었다고 전해진다.
충청도 양반 관련하여 세간의 평가는 비교적 긍정적이어서 가령 셈은 빠르지 못하나 인간미가 있는 사람을 지칭할 때 충청도 양반이 소환되기도 한다. 충청도 양반이니까 어지러운 세상에서도 모두가 이기주의의 늪에 빠져 허둥대도 눈앞의 이익을 위하여 소인배나 하는 약삭빠른 짓거리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공동체 구성원 다수의 막연하지만 분명한 기대와 믿음은 충청도의 소중한 자산이며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충청도 양반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 다수의 긍정적 평가와 내용은 나만 잘살면 된다는 이기적 개인주의가 만연하고 불신 풍조가 당연한 이 시대의 모순과 병리 현상을 치유할 확실한 가르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미래는 다양한 가치가 상호 존중받는 다원 사회로 진행될 것이다. 합리적 경제인을 인간의 원형으로 규정하는 전통적인 자본주의적 사고관의 득세에도, 최소한의 자존감을 당연시하며 양보와 배려, 상호 존중과 신뢰를 고귀하게 평가하는 전통사회의 가치관 또한 응당한 대접을 받는 시대가 되기를 많은 이들이 소원하고 있다. 시대가 하도 어지러우니 냉수 먹고 트림한다 해도 충청도 양반이 사무치게 그립다! /신천식 한양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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