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중순 의장 |
결국, 무리 전체가 한 번도 찬물을 맞은 적 없는 원숭이들로 바뀐 후에도 그 어떤 원숭이도 바나나를 위해 사다리를 올라가려고 하지 않는다. 찬물이 쏟아지기 때문이라는 이유는 모른 채 그저 사다리에 올라가면 안 된다는 것만을 학습했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머리 위로 찬물이 쏟아지게 하던 장치는 사라진 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는 점이다.
이는 비판적 사고 없는 관행 답습의 위험성을 말할 때 자주 인용되는 이야기이다. 행정, 그중에서도 시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분야에 있어 가장 먼저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관행일 것이다. 이것은 설마 하는 안전 불감증과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잊을 만하면 일어나는 대형 사고들은 천재(天災)보다는 방심으로 인한 인재(人災)인 경우가 많다. 지난 2005년 미국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카트리나는 초대형 허리케인이라는 천재가 제방 붕괴라는 인재로 이어지며 미국 역사상 최악의 재앙이라 불릴 만큼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과거 이미 제방 붕괴의 가능성이 여러 차례 제기되며 예견된 참사였지만 시민 안전이 후순위로 밀려나면서 관련 예산이 삭감되었으며 허리케인 이후 구호작업 역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그 피해는 더욱 커졌다는 점이다.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피터 드러커는 '측정되지 않는 것은 관리되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다. 이는 비단 경영에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각종 재난과 관련한 그간의 데이터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여 불확실성을 낮추고 재난 예방, 대응, 복구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는 체계적인 대응체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각 지역의 특성에 맞는 계획 수립이 필요하다. 계획 수립 시 재난 및 안전관리 전문가뿐만 아니라 민간단체, 지역자율방재단 등 지역의 상황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다양한 시민의 참여가 있을 때 재난을 예방하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여러 아이디어가 도출될 수 있을 것이며, 보다 신속 정확한 대응이 가능할 것이다. 아울러, 각종 비상상황 발생 시 주민행동 요령을 담은 메뉴얼에 대한 온·오프라인 교육, 캠페인 전개 등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시민들의 재난 대응 역량을 높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100% 완벽한 계획은 있을 수 없다. 시민의 생명, 삶과 직접 연관돼 있는 현장 행정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세종실록> 기록을 보면 세종은 연이은 흉년으로 백성들이 큰 어려움을 겪자 "기후가 순조롭지 못하니 직접 나가서 벼농사 형편을 살펴보리라"고 하며 직접 민가를 돌아보면서 농사가 잘되지 못한 곳에서는 반드시 농부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고 한다. '문제의 답은 현장에 있다'는 말처럼 시민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수시로 현장을 방문해 시민의 목소리를 듣고 점검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태도가 그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이제 이틀 뒤면 본격적인 무더위의 시작을 알리는 소서(小暑)다. 게다가 7월 초 시작될 올해 장마는 39년 만에 가장 늦은 장마로 예년보다 강한 집중호우가 예상된다고 한다. 대전은 지난해 기록적인 폭우로 인한 수해로 많은 시민이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올해 여름은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지역의 구석구석을 살펴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망우보뢰(亡牛補牢)의 탄식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권중순 대전시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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