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이어온 전통시장..투박한 매력의 5일장
재개발로 묶여 '발목'...코로나 19 침체에도 시장엔 사람들로 '북적'
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가 아니다.
생활의 터전이자 삶이다. 얼마 안 되는 물건값을 깎고 덤으로 몇 개를 얹어주며 사람 인심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시장이다.
대형마트와 편의점, 온라인 쇼핑으로 점차 자리를 잃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주말장터, 플리마켓 등으로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으로 인간관계가 단절되면서 사람 냄새가 나는 시장에 대한 향수도 깊어지고 있다.
중도일보는 충청권의 전통시장, 그리고 새롭게 진화하고 있는 플리마켓, 주말장터 등을 소개하며 지역과 시장이 공존하는 법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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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유성시장 장날인 지난 29일 오후 장을 보러 나온 시민들이의 모습./사진=이유나 기자 |
29일 오후 12시 대전 유성 5일장에 직접 방문했다. 재개발과 존폐 위기에 놓였던 유성 5일장은 장이 서자 여느때처럼 사람들로 북적였다.
대도시에서 보기 드문 5일장으로 1916년 개장해 최대 100년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5일장은 4·9·14·19·24·29일 열린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영향으로 예전만큼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시장의 정을 느끼고 싶어 방문한 시민들의 눈가엔 미소가 보였다.
유성 5일장은 그동안 부침을 겪으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코로나 19로 개장 이후 처음으로 휴점하는가 하면, 장대B구역이 재개발사업으로 추진되면서 존폐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대전시는 중부권 최대 장터인 유성5일장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자 존치관리구역이었던 장대 A와 C구역을 재개발사업구역으로 변경하며 활성화를 모색하고 있다. 주변 상권과 연계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도 수립 중이다.
유성 시장의 시련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재개발 지역으로 묶여있어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것도 상인들에게는 어려움을 증가시키고 있다.
유성시장 상인회 관계자는 "평일에는 힘들어도 장날에는 아직 손님이 온다"고 하면서도 "재개발 지역으로 묶여서 시장 등록이 안돼 제로페이 지원도 못 받고 온누리 상품권도 추가로 못 받는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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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철거 논란에도 시장은 그대로 돌아가고 있다. 5일장이 선 지난 29일 유성장에는 손님과 상인들이 모여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이유나 기자 |
기자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유성 시장을 방문했을 때 시장 입구부터 시끌벅적한 이야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날도 여느 때와 같이 충청도 방방곡곡에서 상인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와 300여 개의 점포와 1000여 개의 노점을 열고 정성스레 준비해온 물건을 팔고 있었다.
신탄진 시장을 거쳐 유성시장에 온 나그네 상인들은 인심 좋은 가게 주인의 허락을 받아 그 앞에서 장사를 한다.
유성시장에선 인터넷 검색으론 절대 알 수 없는 신기한 식자재와 물건들이 수두룩 했다.
올방래묵, 우무묵, 묵말랭이 등을 파는 묵 전문점, 칼만 전문으로 갈아주는 아저씨, 결명자, 맥문동, 천국, 천초, 감초, 꾸찌뽕… 길거리 한약방도 색다른 볼거리였다.
모든 통증을 신기방통하게 없애주는 '쑥뜸'도 이곳 전통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각자의 개성이 있는 상점들이 모자이크처럼 모여 있어 각양각색 별천지에 온 것 같았다.
유성시장은 대형마트처럼 세련되지도 않고 인터넷처럼 편리하지도 않지만 투박한 매력과 삶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상인들은 백화점 직원처럼 친절하진 않지만 '안살꺼면 말고'라는 식의 이른바 '스웩(SWAG, 힙합 뮤지션이 잘난 척을 하거나 약간의 여유, 허세를 부리는 기분을 표현할 때 쓰인다)이 넘친다.
한편으론 상인들이 '몇 근?'이라고 물을 때는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근현대 문학작품 속에 온 느낌도 든다.
자기보다 큰 자루를 머리에 이고 흥정을 하는 할머니, 포대기에 아이를 업고 나물을 사는 아주머니 등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과 사람들로 넘쳐난다.
누군가는 시장이 불편하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래 보아야 예쁘고 자세히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말이 있다.
100년의 전통과 역사가 살아 있는 유성 5일장으로 시장바구니를 들고 가 쇼핑하며, 사람의 정을 느껴본다면 전통시장이 왜 유지돼야 하는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유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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