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대전시 자치경찰위원 (대전대 경찰학과 교수) |
오늘부터 자치경찰제가 광역시·도 단위로 본격 시행된다. 비록 현재는 출발선에서 비슷한 모습을 하지만 앞으로는 하루가 다르게 다양해질 것이고, 시·도는 서로서로 벤치마킹하면서 경찰 서비스 경쟁을 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경찰이 할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데 있다. 특히 자치경찰 사무 대부분이 범죄 예방, 교통, 지역 경비 등이어서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 그리고 시민단체와의 협업이 절실하다. 그동안 경찰은 112 종합상황실로 접수되는 사건·사고에 관한 지령을 받아 현장에 출동해서 '상황종료'를 위한 노력에 전념해 왔다. 하지만 소음 민원 등과 같이 시·군·자치구의 업무라는 이유로 이관해야 하는 일이 훨씬 더 많았다. 가정폭력·아동학대나 응급입원을 요구하는 정신 질환자의 경우에도 경찰은 강제력을 동원해 '분리'하는 일 외에 종국적인 사건 해결을 위한 후속 조치로는 한 발짝도 더는 나갈 수 없었다. 후속 조치를 위해서는 전문가 판단이 요구되거나 관련된 자치단체의 보건복지 행정이 심야에는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는 자치경찰위원회가 자치경찰 사무를 담당하는 경찰공무원 일부에 대해 입법권자가 경찰법에서 부여한 전보권이나 징계권 등 인사에 관한 권한을 사무국의 인력 부족이나 경찰공무원 인사자료 열람 제한 등의 현실적 문제를 이유로 시·도 경찰청장에게 재위임해 다시 돌려주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행 초기에서는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자치경찰위원회가 경찰 사무에 대해 전문성과 자신감이 부족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이것을 이유로 경찰이 그동안 투명하게 잘해 왔으니 다시 돌려줘도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는 생각은 안일하다. 애초 국가 경찰제에 문제가 있어서 자치경찰제를 도입한 것은 아니었다. 경찰 서비스의 생산과 유통 그리고 소비에 관한 자유로운 선택권을 주민에게 돌려주어 치안 공공재에 대한 소비자주권을 확고히 하고자 함이다. 주민의 니즈가 우선적으로 반영하는 경찰 정책을 만들어 시행하고 평가하는 데에 시민이 참여하고, 경찰 서비스를 경찰과 시민이 함께 생산하고 소비한다는 프로슈머(Prosummer)로서의 적극적인 인식전환이 요구된다.
무엇보다도 가장 시급한 것은 시·도와 시·도 경찰청의 연계서비스가 확대돼야 한다는 점이다. 시민이 제도변화를 체감할 수 있어야 하고 현장 경찰관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경찰과 자치단체의 24시간 업무 연결고리'가 제공돼야 한다. 시·도자치경찰위원회는 양 기관의 연계서비스 정책을 적극적으로 수립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 법이 부여한 권한을 보다 실질적으로 행사해야 한다.
이제부터는 공동체의 문제를 더는 경찰에게만 맡겨 두지 말고 시민과 경찰이 함께 머리를 맞대어 고민하고 그 해결책을 찾아 나서는 연대와 협치가 필요하다. 자치경찰제의 본격적인 출발 시점에 서서 주민 중심으로 경찰의 목표와 역할을 다시 설정하고 공동체 일원으로서 저마다의 할 바를 새롭게 모색해야 한다.
여러 개의 문제에는 저마다의 답이 있다. 우리 사회는 주민주권과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통해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다. 행정자치와 교육자치에 이어, 법·제도적으로 완전한 모습은 아니지만, 자치경찰제가 비로소 시작됐다. 우리 지역이 다시 회복되고 활력을 되찾는 열쇠는 이제 우리 손에 쥐어졌다. 오늘부터 우리는 모두 시민이자 경찰이다. /이상훈 대전시 자치경찰위원 (대전대 경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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