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자치경찰제와 소비자주권 회복

  • 오피니언
  • 목요광장

[기고] 자치경찰제와 소비자주권 회복

이상훈 대전시 자치경찰위원 (대전대 경찰학과 교수)

  • 승인 2021-06-30 10:17
  • 수정 2021-07-01 08:47
  • 신문게재 2021-07-01 18면
  • 신가람 기자신가람 기자
사진_이상훈2021
이상훈 대전시 자치경찰위원 (대전대 경찰학과 교수)
인류가 도시를 만들고 모여 살 즈음에 우리는 모두 시민이자 동시에 경찰이었다. 렘브란트의 1642년 작품, '야경(夜警), De Nachtwacht'에 등장하는 민병대처럼, 일반 시민 신분인 야경꾼들이 도시를 범죄와 화재로부터 지키는 것에서부터 경찰업무는 시작되었다. 경찰의 기원을 야경꾼(night watchman)에서 찾는 이유다. 군대와 같이 공동체 구성원들이 돌아가며 불침번을 서면서 서로에게 울타리가 돼 주었다. 그 후 분업과 전문화 과정을 거치면서 점차 유급 종사자로 업무가 고정됐고 '경찰'이라는 이름의 직업이 탄생했다.

오늘부터 자치경찰제가 광역시·도 단위로 본격 시행된다. 비록 현재는 출발선에서 비슷한 모습을 하지만 앞으로는 하루가 다르게 다양해질 것이고, 시·도는 서로서로 벤치마킹하면서 경찰 서비스 경쟁을 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경찰이 할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데 있다. 특히 자치경찰 사무 대부분이 범죄 예방, 교통, 지역 경비 등이어서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 그리고 시민단체와의 협업이 절실하다. 그동안 경찰은 112 종합상황실로 접수되는 사건·사고에 관한 지령을 받아 현장에 출동해서 '상황종료'를 위한 노력에 전념해 왔다. 하지만 소음 민원 등과 같이 시·군·자치구의 업무라는 이유로 이관해야 하는 일이 훨씬 더 많았다. 가정폭력·아동학대나 응급입원을 요구하는 정신 질환자의 경우에도 경찰은 강제력을 동원해 '분리'하는 일 외에 종국적인 사건 해결을 위한 후속 조치로는 한 발짝도 더는 나갈 수 없었다. 후속 조치를 위해서는 전문가 판단이 요구되거나 관련된 자치단체의 보건복지 행정이 심야에는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는 자치경찰위원회가 자치경찰 사무를 담당하는 경찰공무원 일부에 대해 입법권자가 경찰법에서 부여한 전보권이나 징계권 등 인사에 관한 권한을 사무국의 인력 부족이나 경찰공무원 인사자료 열람 제한 등의 현실적 문제를 이유로 시·도 경찰청장에게 재위임해 다시 돌려주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행 초기에서는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자치경찰위원회가 경찰 사무에 대해 전문성과 자신감이 부족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이것을 이유로 경찰이 그동안 투명하게 잘해 왔으니 다시 돌려줘도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는 생각은 안일하다. 애초 국가 경찰제에 문제가 있어서 자치경찰제를 도입한 것은 아니었다. 경찰 서비스의 생산과 유통 그리고 소비에 관한 자유로운 선택권을 주민에게 돌려주어 치안 공공재에 대한 소비자주권을 확고히 하고자 함이다. 주민의 니즈가 우선적으로 반영하는 경찰 정책을 만들어 시행하고 평가하는 데에 시민이 참여하고, 경찰 서비스를 경찰과 시민이 함께 생산하고 소비한다는 프로슈머(Prosummer)로서의 적극적인 인식전환이 요구된다.

무엇보다도 가장 시급한 것은 시·도와 시·도 경찰청의 연계서비스가 확대돼야 한다는 점이다. 시민이 제도변화를 체감할 수 있어야 하고 현장 경찰관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경찰과 자치단체의 24시간 업무 연결고리'가 제공돼야 한다. 시·도자치경찰위원회는 양 기관의 연계서비스 정책을 적극적으로 수립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 법이 부여한 권한을 보다 실질적으로 행사해야 한다.

이제부터는 공동체의 문제를 더는 경찰에게만 맡겨 두지 말고 시민과 경찰이 함께 머리를 맞대어 고민하고 그 해결책을 찾아 나서는 연대와 협치가 필요하다. 자치경찰제의 본격적인 출발 시점에 서서 주민 중심으로 경찰의 목표와 역할을 다시 설정하고 공동체 일원으로서 저마다의 할 바를 새롭게 모색해야 한다.

여러 개의 문제에는 저마다의 답이 있다. 우리 사회는 주민주권과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통해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다. 행정자치와 교육자치에 이어, 법·제도적으로 완전한 모습은 아니지만, 자치경찰제가 비로소 시작됐다. 우리 지역이 다시 회복되고 활력을 되찾는 열쇠는 이제 우리 손에 쥐어졌다. 오늘부터 우리는 모두 시민이자 경찰이다. /이상훈 대전시 자치경찰위원 (대전대 경찰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학대 마음 상처는 나았을까… 연명치료 아이 결국 무연고 장례
  2. 원금보장·고수익에 현혹…대전서도 투자리딩 사기 피해 잇달아 '주의'
  3. 김정겸 충남대 총장 "구성원 협의통해 글로컬 방향 제시… 통합은 긴 호흡으로 준비"
  4. [대전미술 아카이브] 1970년대 대전미술의 활동 '제22회 국전 대전 전시'
  5. 대통령실지역기자단, 홍철호 정무수석 ‘무례 발언’ 강력 비판
  1. 20년 새 달라진 교사들의 교직 인식… 스트레스 1위 '학생 위반행위, 학부모 항의·소란'
  2. [대전다문화] 헌혈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3. [사설] '출연연 정년 65세 연장법안' 처리돼야
  4. [대전다문화] 여러 나라의 전화 받을 때의 표현 알아보기
  5. [대전다문화] 달라서 좋아? 달라도 좋아!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시와 충남도가 행정구역 통합을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홍성현 충남도의회 의장은 21일 옛 충남도청사에서 대전시와 충남도를 통합한 '통합 지방자치단체'출범 추진을 위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했다. 대전시와 충남도는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 지방소멸 방지를 위해 충청권 행정구역 통합 추진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대를 갖고 뜻을 모아왔으며, 이번 공동 선언을 통해 통합 논의를 본격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공동 선언문을 통해 두 시·도는 통합 지방자치단체를 설치하기 위한 특별..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소상공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자영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메뉴 등을 주제로 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해 질리도록 파악하고 있어야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치와 입지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중도일보는 자영업 시작의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울 수 있도록 대전의 주요 상권..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