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신뢰다. 공직 선거에 나선 후보는 유권자에게 공약(公約)을 내놓는데 이는 양 쪽을 이어주는 신뢰의 증표다.
주민 선택을 받은 후보는 자신에 보장된 임기에 공약을 지켜야만 하는 의무가 있다. 혈세로 봉급 받는 선출직 공무원의 최소한 도리고 신뢰를 지키려는 과정이다.
만일 공약이 공약(空約)이 된다면 유권자와의 신뢰는 깨진 것으로 봐야 마땅하다.
정치는 공정이다. 2년 전 문재인 정부를 뒤흔들었던 조국사태는 물론 최근 불거진 LH 사태 역시 공정의 가치 균열에서 시작된 것으로 봐야 한다.
국정의 무한책임을 진 여당은 이로 인해 4.7 재보선 참패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이처럼 공정은 절대 훼손되면 안 되는 국민의 역린(逆鱗)과도 같다.
국회의 입법도 공정해야 한다. 전국 방방곡곡 국민 누구나 수긍할 수 있어야 한다. 특정 지역만 챙기고 특정 지역의 요구에 대해선 나 몰라라 한다면 이는 공정이 아니다.
정치가 곧 신뢰고 공정이라면 세종의사당 설치 논의 과정에서 정치는 아예 찾아볼 수 없는 것 같다.
여야는 그동안 세종의사당 설치에 이미 몇 번이고 합의했다. 2017년 조기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 등 5명의 후보가 공약으로 걸었고 모두 동의했다.
뿐만 아니다. 2018년 지방선거와 2020년 4.15 총선에서도 여야는 한 목소리를 냈다. 21대 국회 들어선 마찬가지다. 특히 지난 4월 27일 열린 운영위원회에선 6월에 세종의사당법을 처리하기로 여야가 철석같이 약속했다.
하지만 이제 와선 이런 저런 이유로 뒷짐이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운영위원장이 선출되지 않아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현안 파악이 안되서…"라고 둘러대고 있다.
더구나 송 대표는 얼마 전 국회방송에 나와선 6월 아닌 대선이 코 앞인 정기국회로 미뤄 세종의사당법을 처리할 수도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6월 처리 약속을 믿었던 충청권으로선 정치권에 대한 신뢰가 깨진 것이다.
영호남 현안입법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과 비교하면 공정하지도 않다.
가덕도 특별법과 한전공대 특별법은 법안 발의부터 본회의 통과까지 각각 93일과 161일 걸렸다. 반면, 세종의사당 설치 근거를 담은 국회법 개정안은 법안 발의 1년이 다 되도록 공전하고 있다.
영호남 현안 입법은 군사작전을 방불하듯 처리하면서 유독 충청 현안 법안처리에는 사골을 끓이듯 하세월이다. 이는 명백한 충청 홀대이며 불공정의 극치다.
정치는 책임이다. 정치인이라면 무릇 자신의 언행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야 당장 실패하더라도 언젠가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세종의사당법 6월 처리가 경각에 달렸는데도 여야는 서로 책임질 생각이 없음이 분명해 보인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발목을 잡고 있다고 발톱을 세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의지가 없다고 헐뜯기 바쁘다.
책임 없는 정치는 그저 정략일 뿐이다. 양당이 세종의사당에 정략을 깔았다는 지적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간단하다.
책임을 지면 된다. 여야는 지금이라도 당장 세종의사당법을 처리해라.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이 시대와 충청의 준엄한 명령이다.
<강제일 서울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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