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현의 재미있는 고사성어] 제77강 낭중지추(囊中之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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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현의 재미있는 고사성어] 제77강 낭중지추(囊中之錐)

장상현/ 인문학 교수

  • 승인 2021-06-29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제77강: 囊中之錐(낭중지추) : 주머니 속의 송곳

글 자 : 囊(주머니 낭) 中(가운데 중) 之(어조사 지) 錐(송곳 추)

출 처 :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평원군우경열전(平原君虞慶列傳)에 보인다.

비 유 : 주머니 속에 든 송곳은 그 끝이 뾰족하여 주머니를 뚫고 나오는 것과 같이 포부와 역량이 있는 사람은 많은 사람 중에 섞여 있어도 눈에 드러난다는 말이다.





어떤 조직이든지 그 조직은 반드시 사람에 의해 관리 유지된다. 특히 한 나라를 경영하는데 있어서는 더 말할 것이 없다. 역사를 상찰(詳察)해 보건데 인재를 소중히 여겨 적재적소(適材適所)에 중용(重用)한 나라는 흥(興)한 반면, 인재를 멀리하고 간신(奸臣)을 우대(優待)했던 나라는 틀림없이 멸망(滅亡)을 면치 못했다.

전국시대 평원군(平原君) 조승(趙勝)은 조(趙)나라 혜문왕의 동생으로, 조나라 공자(公子)의 한 사람이다. 그는 식객(食客)을 좋아해 그에게 몰려온 식객이 수천 명에 달했다고 한다. 당시 제(齊)나라 맹상군(孟嘗君), 위(魏))나라 신능군(信陵君), 초(楚)나라 춘신군(春申君)과 같이, 전국시대 4공자로 불린다.

한 때 진(秦)나라 군대가 조(趙)나라 도읍 한단(邯鄲)을 포위했다. 다급한 조나라는 평원군을 파견하여 초(楚)나라와 동맹을 맺으려고 했다. 조나라왕은 평원군에게 임무를 주었고 평원군은 사신의 수행원으로 식객(食客)중에서 용기도 있고, 문무의 덕을 겸비한 사람 20명을 선발하고자 했다. 그런데 19명까지는 선발하였는데 나머지 한 명을 선발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식객 중에 모수(毛遂)라는 사람이 나서서 그 20명 중에 자기도 가담하겠다고, 자신을 추천했다. 그래서 평원군이 물었다. "선생은 우리 집에 와서 몇 해나 되었습니까?" 이에 모수는 "이제 3년이 됩니다."라고 하니 평원군이 "무릇 현명한 사람이 세상에 있으면 마치 송곳이 주머니 속에 있는 것처럼 그 끝이 반드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은 우리 집에 와서 3년이나 되었는데도 선생의 뛰어난 점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결국 선생은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자 모수는 "저는 오늘 처음으로 주머니 속에 넣어달라고 원하는 것입니다. 만일 일찍부터 주머니 속에 넣어 주셨다면 송곳의 끝은 고사하고 송곳 자루까지 나와 있었을 것입니다." 이리하여 모수는 20명의 사신으로 선발되어 함께 초나라로 가게 되었다.

그 후 평원군의 일행은 초나라에 도착하여 초나라 왕과 동맹의 맹약을 협상하는데, 해가 뜨면서부터 협상을 시작하여 해가 중천에 걸리도록 결정이 나지 않았다. 같이 동행했던 다른 19명이 모두들 모수에게 올라가 해결해 보라고 말하자 모수는 장검을 비껴들고 계단으로 뛰어 올라가 평원군에게 말했다.

"동맹의 이해관계는 두 마디면 결정되는 건데 오늘 해가 뜰 때부터 협상을 시작해서 해가 중천에 걸리도록 결정이 안 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초왕이 깜짝 놀라며 평원군에게 물었다. "이 사람은 무엇 하는 사람이오?" 평원군이 "저의 사인(舍人)입니다." 그러자 초왕이 모수를 꾸짖으면서. "어서 내려가지 못할까! 나는 너의 주인과 협상을 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 무엇을 하자는 것이냐!"

모수가 칼을 손에 잡고 초왕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왕이 저를 꾸짖는 것은 주변에 초나라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왕은 나와 열 발짝 안에 있습니다. 초나라의 많은 사람들을 의지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왕의 목숨은 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모수의 엄청난 용기에 질린 초왕은 모수의 말에 사직을 받들어 동맹을 약속을 했다. 결국 동맹은 한 순간에 성사되었다. 평원군은 동맹을 성사시키고 조나라에 돌아온 후

"나는 이제 더 이상 선비들의 상을 보지 않겠다. 내가 많게는 수천 명의 상을 보면서, 천하의 선비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고 자부했는데 오늘 모(毛) 선생을 보지 못했구나. 모 선생은 세 치의 혀로 백만의 군대보다 더 강함을 만들었다. 나는 이제 감히 선비의 상을 보지 않겠다." 그러고는 모수를 상객으로 대우했다.

뛰어난 인재는 어디서나 그 날카로움을 보인다는 말인 '낭중지추'는 이와 같이 모수라는 사람의 고사에서 유래되었다. 모수는 평소에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주위를 빙빙 도는 정도의 선비로 평가받고 있었는데, 나라에 큰일이 생겼을 때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던 것이다. 인재는 어디에 있든 그 능력이 드러난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의 재능을 믿고 숨어만 있다면 그야말로 은둔자에 불과할 것이다.

지금은 스스로를 알리는 PR시대, 모수의 말처럼 주머니에 들어있어야 드러나는 법,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자신만의 PR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이다.

위의 내용이 주는 교훈은 국가에 충성하는 부분도 있지만 오직 자기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활용해야 한다는 작지 않은 교훈을 보여주고 있다.

이 고사에서 흥미로운 것은 모수의 자신감이다.

자신을 천거하는 일은 분명히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자기 능력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모수 또한 자신의 능력을 믿고 기회를 기다렸다. 하지만 좀처럼 기회는 오지 않았고, 한번 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150% 이상 발휘했다. 주위나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면 절대 본인이 자신을 추천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동양인의 정서는 겸손과 양보를 미덕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것은 선비의 법도에 어긋나는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요즈음은 어떤가, 자기를 위한 홍보가 낯 간지러울 정도로 대담해졌고, 심지어는 자기소개를 위한 학원까지 등장하고 있다.

본인은 본인이 제일 잘 안다. 그러나 간혹 자기 재능에 도취되어 분수를 모르고 함부로 일을 처리하고자 하는 의욕을 보이다 망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볼 수 있다. 혹 자기가 낭중지추의 재주를 갖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이다. 자기가 큰 재능이 있다고 해도 겸손과 베풂을 병행한다면 더욱 날카롭고 큰 낭중지추가 될 것이다.

안자춘추에 나라에 세 가지 상서롭지 못함이 있다고 했다.(國有三不祥)

첫째 현명한 인재가 있는데 나라에서 알지 못함(有賢而不知), 둘째 인재가 있는 줄 알지만 등용치 않음(知而不用), 셋째 등용은 했으나 신임하지 않음(用而不任)이라했다.

모수도 훌륭하지만 그를 받아들인 평원군 또한 큰 군자가 아닌가. 옛날에도 코드인사가 있었나 보다.

장상현/ 인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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