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청년을 생각하며, 이정의 산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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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청년을 생각하며, 이정의 산수화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21-06-25 08:43
  • 수정 2021-06-25 08:45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학창시절 동아리 활동이 참 좋았던 기억이다. 다양한 체험이 가능했으며 세상을 내다보는 창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남녀노소가 조화롭게 함께하는 단체가 유익했다. 조직에 속해있는 건전 인격자는 귀감이 되고 좌표가 되었으며 긍지가 되었다. 따뜻한 보살핌은 가치관 형성과 삶의 동력이었다. 후생가외(後生可畏)로 대해주었던 듯하다. 선후배가 절차탁마(切磋琢磨)해야 함을 일깨우는 말이요, 겸양지덕(謙讓之德)의 가르침 아닌가? 자연스럽게 상호존중이 이루어졌다.

어떤 경지에 이르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나이 먹어 빛 보는 재능이 있고, 젊어서 나타나는 재능이 있다. 젊어서는 몰아 쓰는 패기가 있고, 늙어서는 나누어 쓰는 지혜가 있다. 잘 어울리는 조화가 있어야 빛을 발한다. 나이 많은 사람보다 젊은 사람이 생산성이 높은 것은 불문가지다. 경제적 가치만 내세우는 것이 아니다. 무한한 가능성과 탁월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 그 가능성 진작과 능력을 배가시켜야 하는 중차대한 시기다. 청년은 심신이 절정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가히 폭발적이다.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청춘은 말 그대로 봄꽃이다. 꽃도 피워보지 못하게 해서야 될 일인가? 사회가 오뉴월 우박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젊은이가 좌절하면 국가사회의 미래가 없다. 희망을 지우는 일이다. 도산선생이 말하지 않았는가? "낙망은 청년의 죽음이요,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

국가는 물론 각 지역에서도 청년실업을 걱정하는 논설이 눈에 많이 띈다. 청년실업률이 9.3%라는 통계가 있고, 체감실업률이 25.1%라는 견해도 있다. 숫자로 따지면 100만 명이 넘는다. 청년 실업 방지를 위해 고용할당제, 인턴제, 차별 철폐, 실업 해소, 기본소득 등 각종 법이 제정되었다. 그런데 청년 실업이 더 심각해지는 것은 왜일까?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쉽게 단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나, 보다 근본적 해법이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모르는 사이에 플랫폼(platform)이 주가 되는 사회로 바뀌었다. 정보는 포털사이트나 개인방송에서 얻으며, 각종 관계망으로 상호 의사소통과 교류가 이루어진다. 택배와 같은 물류시스템이 주가 되어 비즈니스가 이루어지는 등 사회 각 분야에 네트워크 의존도가 급속도로 높아지고 있다. 바야흐로 노동의 종말, 고령화 사회에 살고 있다. 청년의 혼을 깨우고 뜨거운 가슴에 불 지피는 일을 우리 교육시스템이 막고 있지나 않은지, 좋은 기업이 만들어지는 것을 제재 및 규제하고 있지나 않은지, 제도나 시스템이 잘 못되지 않았는지, 근로체계가 막고 있지나 않은지, 사회 동력을 무력화시키고 변화에 대한 대처가 잘못되지나 않았는지, 미래지향적 시장 창출에 실패하지 않았는지 사회 전반에 걸친 통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천재는 단명하다는 말이 있다. 동서고금에 그러한 사례는 많다. 과문한 탓으로 천재의 수명이 짧다는 통계는 보지 못했다. 아마 그의 재능이 크게 아쉽다는 표현일 게다. 필자도 몹시 아쉬워하는 조선 시대 화가가 있다. 선조 때 화원 나옹(懶翁) 이정(李楨, 1578 ~ 1607)이다. 30도 채 안 되는 짧은 삶이다. 조부 이상좌(李上佐), 부친 이숭효(李崇孝)를 비롯 대대로 화원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 역시 화가였던 작은 아버지 이흥효(李興孝)에게서 그림을 배웠다. 가법(家法)을 물려받아 이미 10세에 대성했다 하며, 불화, 산수, 인물화에 능하였다고 한다. 한글 이름이 같아 동시대 활동했던 왕손 화가 탄은(灘隱) 이정(李霆, 1554 ~ 1626)과 혼동하는 사례가 많다. 산수화 12점이 담긴 산수화첩과 산수도, 불화와 용호도 몇 점이 전한다. 임진왜란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이순신, 권율 등 공신의 초상화를 그렸다는 기록이 전한다.

3456
이정 산수도, 지본 수묵, 23.5 × 19.1㎝,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그림은 이정의 산수화첩에 들어있는 산수화이다. 그의 그림을 보노라면, 간결하고 정확하며 속도감 있는 필치에 놀라곤 한다. 문기가 넘친다. 어린 나이에 어찌 이리 원숙하고 세련된 화격을 이루었을까? 윤필(潤筆)과 갈필(渴筆)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도 경이롭다. 농담으로 배치한 먼 산과, 주산에서 흘러내리는 암릉의 골격, 안개처리에 의한 공간감과 원근감, 간결한 몇 채의 팔작지붕 집들과 소나무가 어울려, 변화와 통일, 균형감을 준다. 안정감이 있으면서 시원하다. 얼마나 아름다우며 독창적인가?

그림에 그의 품성이 잘 나타난다. 몹시 호방하고 의리를 중시했나 보다. 추위에 떠는 사람을 만나면 옷을 벗어주기도 하고, 좋은 산수를 만나면 집에 가는 것조차 잊고 지냈다 한다. 당대의 탁월한 시인 묵객과도 유대관계가 깊었나 보다. 최립, 허균, 심우영, 이경준, 한호 등에게 배우고 교유한 흔적이 전한다. 기생과도 잘 어울렸던 모양이다. 과음으로 세상을 등졌다 한다. 시대의 이단아라고도 하나 필자는 괴로움, 아픔으로 본다. 조선 시대 중인의 삶을 우리는 잘 안다. 그 짐이 얼마나 무겁고 힘겨웠을까?

꽃도 피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는 생각이다. 20대에 그려낸 그의 작품을 통하여 미래가 절로 그려지지 않는가? 그의 짧은 생애가 통탄스럽기 그지없다. 오늘날 우리 청년도 이와 다르지 않다. 활짝 꽃 피우고 실한 열매 맺도록 배려하고 도와야 한다. 그것은 온전히 기성세대 몫이 아닐까?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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