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혁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학정책연구센터장 |
우리의 수명은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고대 로마시대와 그리스 시대의 평균수명이 약 30년에 불과했고, 조선시대 왕들의 평균수명이 약 46세에 불과했던 것으로 보면, 현재 80세가 넘는 평균수명은 그 당시에는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장수와 노화는 또 다른 문제다. 장수로 인해 생긴 고령화 사회에서는 노화가 가장 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다. 오래 사는 것과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이제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아니라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됐다. 이러한 고령화 시대에 우리는 노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의학적으로 노화는 구조와 기능이 퇴화돼 가는 과정이다. 몸속의 유전자에 각인돼 있는 생체시계의 작용, 또는 살아가면서 받는 누적된 손상에 의해서 구조와 기능이 점차 쇠약해지는 것이다. 이로 인해 질병에 대한 감수성과 저항력이 약해지면서 여러 가지 신체적·정신적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최근에는 의학을 통해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항노화를 위해 많은 자원이 투여되고 있으며 항노화산업 또한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한의학에서는 노화를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인다. 한의학에서는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의 모든 것은 생로병사를 겪으며 순환해 간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주요한 동양 의서에서 늙지 않고 오래 살 수 있는 다양한 건강관리법과 치료법을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는 것은 매우 반어적이다. 요컨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젊고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욕망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장수와 노화는 동전의 양면이다. 장수시대에 노화를 극복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진시황은 불로초를 찾아 전 세계를 수소문했다면, 우리는 현대과학을 통해 새로운 의미의 불로초를 찾고자 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노화와 관련된 유전자를 규명하고 이를 제어하려는 노력, 노화로 인해 발생하기 쉬운 기능적인 퇴화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 노화로 인해 생기는 구조적이고 외형적인 모습을 지연시키려는 노력, 극단적으로는 줄기세포 등을 활용해 노화가 된 부위를 새로운 젊은 세포로 교체하려는 연구 등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세포 단계에서, 동물실험 단계에서 많은 진전을 보이고 있다. 언론에 발표되는 수많은 연구성과들을 보면 조만간 노화가 정복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노안의 현실적인 해결책은 아마도 다초점렌즈가 될 것이다. 그리고, 건강하게 장수하는 방법에 대해서 누가 묻는다면, 음식을 절제하고, 꾸준히 운동을 하고, 기저질환을 잘 관리하라고 얘기하게 될 것이다. 아직까지도 노화의 대부분은 극복하기보다는 순응해야 할 영역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은 노화라는 현상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의 몸과 정신은 항상 우리가 늙고 있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지만, 우리 스스로는 외면하고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잘 받아들여야 한다. 오히려,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건강한 노화를 맞이할 수 있다. 내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알아야 육체적으로 무리를 하지 않을 수 있고, 내 정신이 노화되어 어느덧 완고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직장과 가정에서 좀 더 성숙한 소통을 할 수 있다. 점차 노인이 사회구성원의 대다수를 차지하게 되는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며, 안 늙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잘 늙기 위해 노력하는 게 대안일지도 모르겠다. 이준혁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학정책연구센터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