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의 구성 : 袴(사타구니 과), 下(아래 하), 之(~의, 관형격조사), 辱(욕되게 할 욕)
출처 : 사마천의 사기(史記) 회음군열전(淮陰君列傳)에 기록되어 있다.
본 고사성어는 이보다 더 큰 치욕이 없을 때를 비유한다, 그리고 큰 뜻을 품은 사람은 하찮은 일로 논쟁을 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내포하고 있다.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과 함께 한(漢)나라를 세우는데 큰 공을 세운 한신(韓信)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어려서부터 장차 나라의 최고 명장(名將)이 되겠다는 큰 뜻을 품고 있었다. 그는 '손자병법(孫子兵法)'을 좋아해 밤낮으로 열심히 탐독하였다. 또 천하의 최고 명장(名將)을 꿈꾸며 다른 무사나 협객들처럼 늘 보검을 차고 다녔다.
하루는 그가 주막(酒幕)에서 술로써 공허한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술 몇 모금에 취기가 오른 한신은 졸린 두 눈을 비비며 습관적으로 옆구리에 찬 검을 뽑았다. 그리고는 긴 한숨과 함께 도로 집어넣었다.
그가 몸을 비틀거리며 주막을 나와 골목에 들어서자 회음(淮陰)의 푸줏간 패들 가운데 한 젊은이가 한신을 얕잡아보고 놀려 댔다. "보아하니 덩치도 크고 무예에도 꽤나 능한 자처럼 늘 보검을 차고 다니던데 어디 나와 한번 겨뤄보지 않겠느냐?"라고 시비를 걸어왔다. 이에 한신은 "어찌 감히 너와 겨루겠느냐. 오늘은 내가 급한 볼일이 있으니 그만 길을 비켜라"라고 하자 불량사내는 "검술은 몰라도 사람을 죽이는 법은 알고 있을 테지? 겁쟁이가 아니라면 그 검으로 내 목을 쳐 보거라." 한신이 한 발자국 물러서자 불량배는 더욱 신이 나서 말했다.
"키는 8척인 놈이 배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네. 이깟 일에 벌벌 떨다니. 이 마저도 못하겠다면 내 가랑이 밑으로 기어나가 보라."라고 하며 불량배는 저잣거리 가운데 두 다리를 쩍 벌리고 섰다.
두 사람의 오가는 고성에 구경꾼들이 우르르 몰려들었고, 심한 모욕에 더는 참을 수 없어 한신은 손으로 보검을 꽉 잡고 한참 동안 그를 노려보았다.
"만약 저 자를 죽이면 나는 살인죄로 신세를 망칠 것이 분명해. 어쩌면 죽을 죄를 면치 못할지도 모르는 이 상황에서 명예나 체면을 지켜서 무엇 하리."
한신은 불량배를 한참 훑어보더니 납작 엎드려 그의 다리 사이로 엉금엉금 기어 지났다. 모여 섰던 구경꾼들은 배를 끌어안고 웃었다. 그 후 사람들은 한신을"가랑이 사이로 지나간 놈"이라고 불렀다.
'인욕(忍辱)', 그것은 '치욕(恥辱)을 참는다'는 뜻이다.
큰일을 위해서는 목전의 작은 이익에 현혹(眩惑)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굴욕(屈辱) 또한 참고 견뎌낼 줄 알아야 한다.
주(周)나라 건국의 발판을 완전하게 닦아 놓은 문왕(文王)이 자기의 맏아들 삶은 국을 폭군 주왕(紂王)으로부터 받아 꾹 참으면서 마신 것이나,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오왕(吳王) 부차(夫差)에게 패한 후 스스로 부하 되기를 자청하고 말똥을 치우고, 심지어는 오왕(吳王) 부차(夫差)의 대변을 찍어 맛보았던 것도 대사(大事)를 위해서는 인욕(忍辱)이 있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만약 그 때 문왕(文王)이나 구천(句踐)이 그렇게 하지 않았던들 아마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한 철학자는 "모욕(侮辱)과 수치(羞恥)를 겪으며 배우는 것이 가장 빠르고 확실하면서 가장 오랫동안 그 교훈을 잊지 않게 해준다"라고 말한다.
굴욕은 사람들에게 깊이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주며 순조로운 상황에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교훈을 몸소 체험하게 해 준다. 굴욕은 더 깊은 현실체험을 통해 사회를 정확히 이해하고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사고방식을 갖고 광활한 성공의 길을 개척할 수 있게 해준다.
세월이 지난 후의 일이지만 사기(史記)를 집필한 사마천(司馬遷)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한신에 대한 논평(論評)을 통해 '만약 한신이 도(道)를 배워 겸양(謙讓)을 지키며 자기의 공적을 자랑하거나 재능을 내세우는 일이 없었던들 한(漢)나라 왕조에 대한 그의 공훈은 저 주공(周公)과 강태공망(姜太公望)에 비교될 수 있는 것이어서 국가의 원훈(元勳)으로서 뒷 세상에 길이 사당(祠堂)의 제사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기를 꾀하지 않고 천하가 이미 통일되고 난 뒤에 여전히 반역을 꾀하고 있었으니 온 집안이 전멸을 당하게 된 것도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젊은 시절 모욕을 참고 성공한 처세가 말년에 역적으로 참수된 사연이 참으로 안타깝다. 역시 인간은 어떻게 죽었는가가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一勤天下無難事 百忍堂中有泰和(일근천하무난사 백인당중유태화)'라는 말이 있다.
한 번 부지런하면 천하에 어려운 일이 없고, 백 번 참으면 가정에 큰 화평이 온다는 뜻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주는 이 참다운 교훈인 참을 줄 아는 미덕(美德)이 실천으로 연결되기를 기대해본다.
장상현/ 인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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