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선필 교수 |
오늘날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대다수 개인은 불안과 두려움에 쌓여 산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여러 가지 환경 속에서 두려움과 불안을 떨치지 못하고 살아간다. 지난 반세기 동안 전쟁의 참화를 이겨내고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고 이제 세계 10대 경제대국 안에 들었다고 자랑하지만 속은 썩어가고 있다. 끝없는 경쟁에 시달리는 사회, 다차원적 갈등과 대립이 멈추지 않아 한마디로 행복하지 않은 사회가 되었다. 즉, 지금까지 한국 사회가 이룩한 경제성장의 성과들이 국민 개개인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데는 실패한 것이다
이러한 실패는 한마디로 경제성장을 기업 중심으로 추진하면서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자본을 축적하여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한 거시적 경제 정책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과정을 되돌리는 것은 이제 기업을 주로 하는 거시적 경제정책이 아니라, 개인에 대한 직접적 지원을 주로 하는 미시적 경제정책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수적이라 생각하고, 그중 하나가 바로 기본소득 논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시적 경제성장 구조에서 기업은 계속 이익을 남기면서 부유해지지만, 대다수의 노동자는 경쟁과 과로에 내몰려왔다. 실제로 숙련직 일자리에서의 퇴직연령이 계속 낮아지고 있으며, 이렇게 퇴직한 노동자들은 상당수는 불안정한 영세자영업의 길을 걷게 된다. 영세자영업의 대부분은 음식숙박업에 종사하고, 이들의 경우 3년 생존율이 30%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반복된 자영업의 실패나 실업 기간의 증가는 시간이 흘러서 노인 빈곤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불안정한 근로환경은 장시간 근로시간에 연결된다. 우리나라의 근로시간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편이다. 장시간 근로는 스트레스와 건강 악화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건강하지 못한 노년으로 이어지며, 노인 건강문제는 노인 빈곤과 함께 높은 노인 자살률의 핵심요인이기도 하다.
경쟁적 노동시장과 장시간 근로는 결혼과 가정생활에 치명적 제약이다. 아무리 무상보육이 있다 해도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시간보다 더 근무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육아나 보육을 이유로 휴가를 가거나 휴직을 하는 부담이 너무 크다. 이 때문에 여성의 경력단절 비중이 높고, 경력단절 이후 다시 일하게 되도 높은 임금 격차를 경험한다.
급격한 기술발달은 일자리를 줄이고 변형시키면서 좋은 일자리를 위한 경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일자리 경쟁은 사교육 경쟁으로, 사교육 경쟁은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녀에게 대물림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높은 사교육비와 낮은 사회 이동성은 다시 일가족 양립의 어려움과 겹치면서 저출산 현상을 지속하게 만들고, 이는 동시에 높은 노인 빈곤과 높은 자살률의 중요한 배경이 된다.
어떻게 이 거대한 악순환의 사슬을 끊을 수 있을까? 이러한 사회구조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 다양한 대안들이 논의되고 있다. 현재 주류를 이루는 경제적 대안들은 경제적 자유주의에 의거한 탈규제 및 노동시장 유연화 논의와 대기업-수출주도성장 체제의 개혁 방안과 같은 것들이 있다. 이러한 거시적 구조의 변화가 국민 개개인의 안정과 행복에 연결되기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처방들이다 오히려 현재 단계에서 필요한 것은 보다 직접적으로 개인의 삶에 효과를 나타내는 직접적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새로운 방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현재까지는 개인의 행복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방식이나 개인의 안정과 행복을 통해서 사회의 변화를 도모하는 사회문제 해결 방식은 충분히 고려되지 못하였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이 본질적으로는 개인에 기반하고 있으며, 개인들의 문제가 집합적으로 사회적 문제를 확대 심화시키고 있다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오히려 새로운 해결책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기본소득과 같은 제도를 통해 개인에게 사회경제적 안정을 제공하는 것은 개인의 불안정성을 줄이고 양극화를 줄임으로 악순환을 개선하는 시작이 될 수 있다. 나아가 이러한 사회경제적 안정성은 개인에게 자유를 증진하고 행복과 창의성을 높여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기본소득을 통해 개인은 불안과 두려움을 넘어서는 심리적 안정과 나아가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어서 궁극적인 행복에 이르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생각한다.
즉, 그동안의 사회문제 해결방식을 제도적이고 사회적인 거시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이를 통해 개인을 행복하게 하려고 했다면, 이제는 이를 뒤집어서 개인에게 안정을 제공해서 이를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는 상향식 접근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개인에게 안정을 주어 위험회피 성향을 감소시키면, 창업이나 사회혁신과 같은 새로운 도전에 더 적극적인 사회가 되게 할 수 있다. 개인의 안정성은 관계나 사회적 재생산에 보다 적극적일 수 있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기본소득 논의는 근본적으로 개인에게 직접적 자유와 안정을 제공하여 현대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전환적 주장이라 할 수 있다. <끝>
/권선필 목원대 공공인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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