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익준 경제사회교육부 기자 |
그런데 행동은커녕 양심 따윈 갖다버린 이들이 있다. 최근 대전 산내 골령골 유해발굴 자원봉사 신청자 가운데 낯익은 이름들이 등장했다. 골령골 학살 책임자나, 우익계열, 친일인사들이 신청자에 기재된 것이다. 발굴작업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고인들과 유가족을 모욕하는 악의적인 행동이다.
골령골은 한국전쟁이 터진 직후인 1950년 6월 말부터 1951년 초까지 대전형무소 수감자와 지역주민 등 최대 7000명이 집단 학살당한 곳이다.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으로 불리는데, 수천명이 골짜기를 따라 한 줄로 세워진 뒤 총으로 학살당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단순했다. 치안유지, 북한군에 동조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이들은 무참히 살해됐다. 학살은 충남지구 방첩대(CIC)와 2사단 헌병대, 지역경찰 주도로 이뤄졌다. 이 일은 유가족들의 증언으로만 이어져 오다 2000년 비밀문서 공개로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를 거쳐 유해발굴이 진행되고 있다.
유해발굴은 고인들의 유골을 찾는 목적에 더해 굴곡진 현대사의 진실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자원봉사자 모집을 허위로 신청하다니, 상식 밖의 일이다. 갑자기 몰려든 10여 건의 자원봉사 신청은 대부분 허위였다. 연락처는 도용됐거나, 조작 또는 아예 없는 번호였다.
신청자 이름은 더 기가 막힌다. 학살 책임자와 우익계열, 친일인사 이름을 버젓이 써놨다. 한국전쟁 당시 골령골을 비롯한 전국 민간인 학살을 지시한 김창룡, 1·2차 골령골 학살을 지휘하고 점검한 심용현, 백선엽 전 육군참모총장의 사촌누나인 백희엽 등 악의적 의도로 볼 수밖에 없는 이름들이 기재됐다.
심용현의 경우 소속란에 육군 2사단 헌병대로 적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골령골 학살 당시 그는 2사단 헌병대 소속 중위였다. 이밖에 일제 강점기 고등계 경찰인 하판락, 반공검사 오제도, 이승만 전 대통령과 이기붕 전 부통령, 박정희 전 대통령 이름으로도 자원봉사를 신청했다.
장난을 넘어 악랄하고 잔인한 행동이다. 발굴작업에도 찬물을 끼얹는 일이다. 업무 방해 혐의로 처벌할 수 있다는 의견들이 있지만, 산내골령골대책회의는 일손과 시간이 부족해 정식 수사 의뢰는 고민 중이다. 현재 대책회의는 유해발굴과 위령제 준비 등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상황이다.
처벌 여부를 떠나 그들에게 묻고 싶다. 양심을 버리십니까?
송익준 경제사회교육부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