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요지는 그랬다. 흔히 기자를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읽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취재는 사건과 상황, 취재원의 말에 담긴 의미를 읽어야 하고, 편집은 취재기자가 만들어 온 기사 속 사실 너머의 의미를 읽어야 한다. 그 말은 백번 맞다. 읽는다는 것은 기자에게 참 중요하다. 그 말에 따라 난 불행한 기자인 게 분명했다. 읽기의 중요성을 놓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랬다. 읽기의 필요성이 꼭 기자에게만 한정된 건 아니었다. 세상엔 읽을 것들이 많다. 일례로 돈을 읽은 사람은 돈을 벌었고 권력을 읽은 사람은 권력을 얻었다. 읽는 다는 건 세상살이의 키였다. 사회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사람 읽기'는 필수일지 모른다.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사회 속에서도, 그 구성원인 사람과 주변을 읽어내는 일은 피할 수 없다.
사람을 읽는 다는 건 단순히 상대가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상대를 살펴보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상대를 이해하고 관심을 가지는 것을 전제로 한다. 상대의 입장에 서서 상황을 바라보는 거다. 결국 사람을 잘 읽는 다는 건 상대를 배려할 줄 앎을 뜻한다.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읽는 일이 피곤해지는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연습은 고사하고 더이상 읽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상대의 의중이나 상황을 파악하는 것을 귀찮다고 여긴다. 오히려 주변을 과하게 살피는 사람이 있으면 핀잔을 주거나 괜한 오지랖이라며 불편해한다. 세상 돌아가는 일 역시 더이상 읽고 싶은 대상이 아닌 듯하다. 당장 내 앞에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어쩌면 관심을 두고 살폈어야만 했던 기사 속 이야기들과 사람을 외면한다.
이는 '나'로 편향된 읽기습관을 불러일으킨다. 모든 상황을 '나'의 출발점으로 읽어낸다. 나도 중요하지만 사회는 나만 중요할리 없다. 결국 나의 생각과 감정에만 함몰되는 실수를 저지르게 한다. 기사 속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직장 내 갑질, 유명인의 막말 논란, 또는 데이트 폭력들이 그 부작용일지 모른다.
살면서 모든 사람을 완벽하게 읽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상대를 읽어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사람은 평생 누구에게도 읽히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될지 모른다. 누구에게도 관심 갖지 않는 사람. 이해하지 않는 사람. 읽지 않는 사람은 분명 불행한 사람일 것이다.
유지은 기자 yooj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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