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는 슈만의 부인 클라라를 처음 본 순간 운명적인 예감을 느낀다. 스승의 부인 클라라를 향한 사랑의 감정이 불같이 타올랐으나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클라라는 이미 남의 여자인 것을. 브람스는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클라라에 대한 한결같은 마음으로 버텼다. 한 여인에 대한 사랑이 이토록 끈질지고 집요할 수 있을까. 정말 사랑인가, 집착인가. 분명 클라라도 브람스의 마음을 알아챘을 것이다. 음악가로서 다행이라면 이런 고통과 고뇌가 있어 명작이 태어났을 터.
대학 4학년 때 교생실습을 나갔던 중학교에서 갓 결혼한 남자 교사를 만났다. 나 역시 처음 봤을 때 예사롭지 않은 느낌에 사로잡혔다. 항상 그 교사의 동선에 신경이 쏠렸다. 그가 결혼한 기혼자라는 건 안중에도 없었다. 내 감정이 중요했다. 한창 피가 뜨거운 20대 아니던가. 그도 내 마음 같았을까. 서로 주고받는 말과 말들이 들떠 있었다. 그 말의 행간엔 우주보다 더한 의미심장한 의미가 내포됐다. 정신못차릴 정도로 몰입이 거셌다. 결국 교생실습이 끝나고 대전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친구와 후배들은 펄쩍 뛰었다. "그건 사랑이 아니다. 일시적인 감정이다", "결혼한 남자인데 그럴 수 있냐. 정신차려라"…. 다행인지 만나기로 약속한 날 엇갈려 못 만나고 말았다. 그 후로도 못 만났다. 나도 그도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만나선 안된다는 것을.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그때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하곤 한다. '다시 못 볼 꿈이라면 차라리 눈을 감고 뜨지 말 것을 사랑해선 안될 사람을 사랑하는 죄이라서 말 못하는 내 가슴은 이 밤도 울어야 하나~.' '신라의 달밤'의 독특한 창법의 현인의 달콤한 목소리가 귀를 간질인다. 청춘의 한 시절이 그렇게 꿈결처럼 지나갔다.
우난순 기자 rain4181@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