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
그렇지 않아도 오늘은 노래로 인해 즐거운 날이었다. 수년 전부터 같은 대학교수들이 합창 동아리(?)를 꾸려 매주 한 번씩 모여 노래했었는데, 코로나 19로 인해 그 활동을 전면 중단한 상태였다. 능력 있는 지휘자 덕분에 무대에도 올라보기는 했지만, 의학이나 간호학을 전공으로 하는 교수들이 노래를 좋아한다는 공통점 하나로 모였으니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노래할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활동을 중단한 사이 캠퍼스 이전에 따라 함께하던 교수들이 나뉘게 돼 못내 아쉬운 채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두어 주 전 교가 부르기 이벤트에 참여하자는 의견이 단체 카톡에 올라왔다. 애사심도 고취하고, 노랫말에 나오는 '인간사랑, 생명존중'의 이념도 소리 내어 다시금 마음에 새기자는 취지인 듯했다. 여하간 작은 일에도 감동하기를 잘하는 교수의 제안에 더러는 일 났다고 놀라면서도 다들 기꺼이 응해 참여하기로 하였다. 이벤트의 참여 조건에 합창은 맞지 않았으나 우리는 합창단이니까 함께 부르기로 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기승을 떠는 코로나 때문에 모여서 연습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결국, 우리는 각각 있는 곳에서 노래 부르고 그 소리를 합치기로 했다. 각자의 노래를 녹음하고, 영상을 녹화해 합쳐서 만드는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합창이라고나 할까. 점심나절, 서로의 소리가 합해진 노래가 올라왔고 소프라노, 알토, 테너와 베이스로 저마다의 성부를 노래하는 구성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얼마 만에 보는 노래하는 모습들인지 반가움에 모두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한 사람씩 부르는 노래를 들을 때와는 달리 매우 그럴듯한 합창이 됐기에 과학의 힘, 기계의 힘에 감탄하며, 얼마나 많은 보정을 했는지 궁금해졌다.
왜냐하면 한 해가 다르게 가창 실력이 줄어드는 필자이기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그렇게 많이 보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저 잘 부르는 소리는 좀 크게, 그렇지 않은 소리는 좀 작게 조정했다고 한다.
합창할 때 누구나 정확한 음정으로 부르려고 애쓰지만 실제로는 약간씩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약간씩 차이 나는 소리가 어우러지면서 합창의 매력,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는 설명이었다. 물론 정확한 음정으로 부르는 사람은 필히 있어야 하지만, 만약 모두 똑같이 정확한 소리를 낸다면 오히려 건조해져서 듣기 좋은 소리가 되지 못한다고 한다.
물론 완전히 다른 소리를 낸다면 그거야 불협화음이 되겠지만, 미세한 차이는 함께 하면서 아름다움을 이룬다니… 아, 이건 또 다른 차원의 어우러짐을 일깨워주는 현상이다. 이제껏 합창이나 오케스트라나 소리가 다른 것만으로 조화를 이룬다고 생각했지, 맞고 틀리는 차이도 한몫하는 줄은 미처 몰랐다. 아무튼, 오랜만의 합창으로 우린 영상으로나마 서로를 바라보고 웃을 수 있었다.
서로 호흡을 맞추고 소리를 맞추는 합창을 할 때 활성화된다는 '사회적 뇌'의 효과를 잃은 채 지낸 시간이 해를 넘긴 지 오래고, 앞으로도 얼마나 더 영향을 미칠지 몰라 두렵지만, 리버먼(Lieberman)의 말처럼 어떻게든 우리는 사회적 연결을 시도해야겠다. 사람을 만나고 소통하려는 욕구는 사회적 존재인 인간에게는 기본 중의 기본인데, '사회적 거리두기'에 밀려 있으니 그게 큰 문제다. 그렇다, 떨어져 지내더라도 마음만은 끊어지지 않도록 하자. 이메일로, 카톡으로, 전화로, 편지로, 영상으로 서로를 찾자. 따뜻한 인사 한마디를 꼭 보태어서. /임숙빈 을지대 간호대학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