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 盡(다할 진) 忠(충성 충) 報(갚을 보) 國(나라 국)의 네 글자로 되어있다.
출처 : 북서(北書) 안지의전(顔之儀傳)에 실려 전해진다.
해마다 상기하는 일이지만 6월은 호국보은(護國報恩)의 달이다.
호국보은이란 나라를 지키고 나라를 위하여 힘쓴 사람들의 공훈에 보답함을 말한다.
우리는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커다란 비극을 치뤘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민족의 비극인 6.25전쟁은 구소련(舊蘇聯)의 사주를 받은 김일성(金日成)이 일으킨 명백한 침략전쟁이며, 그 후 UN이 개입되고 소련과 중국이 북(北韓)을 지원하는 이념전쟁으로 확대되어 아직까지 휴전선이 존재하고, 이산가족(離散家族)들의 한(恨)을 풀어주지 못하며, 서로를 적대시(敵對視)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아물지 않는 6.25 후유증은 이제 불행하게도 비극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집단까지 생겨 숭고한 호국영령(護國英靈)들의 마음을 짓밟는 역할마저 서슴지 않고 있다.
진충보국(盡忠報國)의 유래는 멀리 중국의 남북조(南北朝)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송(宋)나라 휘종(徵宗) 때 금(金)나라가 여러 차례 송나라를 침략하였다.
그 당시 부정부패(不正腐敗)가 만연했던 송나라는 금(金)나라를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굴복해서 황하(黃河) 이북의 땅을 모두 금나라에 내어주고 휘종(徽宗)과 그의 아들 흠종(欽宗)은 수도(首都)인 개봉(開封)이 함락될 때 포로로 잡혀서 북방으로 끌려갔다.
이런 와중에서도 휘종의 아홉째 아들인 강왕(康王)은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탈출하였고, 그는 장강(長江)을 건너 절강 임안(臨安)에서 남송(南宋)을 개국하여 고종(高宗)이 되었다. 그렇게 한 후 송나라는 겨우 나라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당시 송나라 조정에 있던 대신들은 대부분이 무능하고 어리석은 데다가 놀기를 좋아해서 나라의 큰일은 돌보지 않고 사리사욕(私利私慾)을 채우기에 급급하고 있었다.
그러나 남송(南宋)에는 다행히 악비(岳飛)라는 큰 충신영웅(忠臣英雄)이 있었다.
그는 무예(武藝)와 병법(兵法)에 뛰어났으며, 밤낮으로 나라의 위기에 대해 진정으로 염려하였다. 이런 난세를 보면서 악비(岳飛)는 탄식을 금할 수 없었다.
이때 아주 현명하고 대의(大義)에 밝은 악비의 어머니는 아들이 나라를 위해 늘 걱정을 하면서 국가를 위해 큰일을 하겠다는 결심을 세운 것을 알고 매우 기뻐하며 격려하였다.
어느 날 악비의 어머니는 아들이 서재에서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며 탄식하는 것을 보고 아들에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든지 간에 너는 나라의 은혜(恩惠)에 보답(報答)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 뜻에서 내가 네 등에 문신(文身)을 새겨 영원히 잊지 않게 해주고자 하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악비는 나라에 충성을 다할 뿐 아니라 부모에게도 효성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어머니의 말을 들은 그는 즉시 웃옷을 벗고 돌아앉아 어머니에게 문신을 새기게 하였다.
악비의 어머니는 서슴없이 아들의 등에 '진충보국(盡忠報國)'이란 네 글자를 새겨 넣었다.
그 후 악비는 북벌을 하여 여러 차례 전투에 승리했고, 그는 국가적 영웅으로 휘종과 흠종을 모셔 오고 빼앗긴 강토를 수복하자고 주장했지만 고종(高宗)은 화의(和議)를 주장하는 당시 재상인 진회(秦檜)의 말만 듣고 악비의 말은 무시하였다.
그 후 악비는 진회의 음모에 빠져 서른아홉이라는 젊은 나이에 국가에 더 충성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 말았으며 송나라는 금나라에 군신(君臣) 관계를 맺기에 이르렀다.
악비는 오늘날 중국인들에게 제갈량(諸葛亮)에 버금가는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리고 남송(南宋) 조정(朝廷)은 그에게 무목(武穆), 충무(忠武)의 시호를 내리고, 악왕묘(岳王廟)라는 사당을 지어 추모하는 등 악비장군을 크게 추앙하고 있다.
악비의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아들의 등에 '진충보국(盡忠報國)'이란 문신을 새겨 주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하여 악비와 같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개인의 이익은 돌보지 않고 일하는 것을 진충보국(盡忠報國)이라고 한다.
김일성(金日成)이 일으킨 6.25 사변 때 대한민국의 젊은 청년들이 진충보국(盡忠報國)이라고 쓴 머리띠를 두르고 입영열차에 올라 전선으로 떠나 국가를 위하여 목숨을 던진 고귀함, 또 조국을 위해 이름 없이 산화한 무명용사, 학도병들에게 한없는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그들은 명예도, 재물도, 권력도 아닌 오직 조국(祖國)을 위기(危機)에서 건져내고자 하는 일념(一念)에서 꽃같은 젊은 고귀한 생명을 바쳤던 것이다.
국가의 안위와 풍요는 개인들의 사욕(私慾)이나 파당(派黨)들의 이익추구에서는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
당(唐)나라 백거이(白居易)는 이렇게 노래했다.
天下雖興好戰必亡(천하수흥호전필망)
天下雖安忘戰必危(천하수안망전필위)
不好不忘天下之王也(불호불망천하지왕야)
천하가 비록 흥해도 전쟁을 좋아하면 (그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
천하가 비록 평안해도 전쟁을 잊고 있으면 (그 나라는) 반드시 위태롭다.
(따라서) 전쟁을 좋아하지 않고, 평안함에 (전쟁대비)잊고 있지 않는 자 진정한 왕이다
국민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고귀한 생명을 아낌없이 조국에 바친 거룩한 호국영령(護國英靈)께 부끄러움이 없는 후손이 되어야 한다. 이 고귀하고 소중한 진충정신(盡忠精神)을 정치적으로 장난을 치는 자들은 국가를 위태로움으로 몰아가는 가장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자행하는 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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