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선 교수 |
강의는 야밤에 있었다. 실시간 원격 강의였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눈이 감길 법한 시간대였다. 세 사람의 강사는 서울의 한 스튜디오에서, 마흔 명의 영상기자 수강생들은 자신의 일터나 주거지에서 참여했다. 기자들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집회에 참여한 시민이 있다. 그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해야 하는가. 정치인이 특혜분양을 받았다는 의혹이 있다. 그 정치인에게 분양권을 전매한 가난한 일반인을 방송에 노출할 수 있는가. 고위층이 누린 부당한 특혜를 조명하고자 궁색하게 살아가는 전매인의 집을 보여주어도 되는가. 학교 건설현장에서 노동자가 추락했다. 학교 담장을 넘어가 취재해도 되는가. 공인은 모자이크 처리를 하지 않아도 무방한가. 공인은 누구인가. 기자들은 묻고 또 물었다.
자유로운 취재가 보장되지 않으면, 보도의 자유는 제 기능을 다할 수 없다. 따라서 언론의 자유는 '취재보도의 자유'를 의미한다. 자유로운 취재와 자유로운 보도는 책임을 수반한다. 영상보도가 시민의 인격권을 침해할 때 지불해야 할 대가는 크다. 한국의 명예훼손법은 형사처벌의 강도에서 무섭기로 유명하다. 보도한 '내용'이 공적인 것이라서 면책되더라도 '취재'의 방법이 위법하여 책임을 지는 사례도 많다. 영상기자들은 법적인 책임 외에 윤리적 비난을 감당해야 할 때도 많다. 눈앞의 취재원 생명이 위태로운 듯하다. 계속 촬영을 해야 하는가, 아니면 설령 별것 아닌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우선 취재원의 위험을 선행적으로 확인해야 하는가? 영상기자들은 자신에게도 계속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학교는 그 기준과 사례를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는다. 언론사도 기자의 교육이나 재교육에 인색하다. 반면 시민들의 권리의식은 크게 신장됐다. 언론의 취재가 위법하다면, 혹은 언론의 영상보도가 시민의 인격권을 침해할 경우 언론소송으로 응수하는 시민들이 크게 늘었다.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협회를 중심으로 지혜를 모아 나갔다. 현장의 영상기자들이 제기한 구체적인 질문들을 취합했다. 수백 개의 질문이 쏟아졌다. 여러 차례 시민단체와 검찰청, 경찰청, 언론 관련 기구 전문가들의 자문을 구했다. 스스로 묻고 답하며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일이었다. 취재보도 가이드라인을 준수하지 않은 영상보도에 대해서는 이달의 기자상이나 올해의 영상기자상 수상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다. 그것도 유례없는 일이었다. 옷깃을 여미고 영상기자들에게 저널리즘의 원칙과 결기를 배웠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작년 가을부터 영상기자협회는 전국의 영상기자들을 대상으로 자체 교육을 시작했다. 하루 일과를 마친 야밤이나 주말 시간을 이용했다. 수백 명의 국내 언론사 영상기자들이 동참했다. 며칠 전 교육에는 외신기자들도 참여했다. 에이피, 로이터, ABC뉴스, NHK, 후지TV 등 유수한 글로벌 언론사 기자들이었다. 외신기자들 역시 매우 유익하고 좋은 질문을 공유해 주었다.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어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온라인 실시간 줌 교육화면에서, 그들은 한 점 흐트러짐 없이 바른 자세로 카메라를, 교육에 참여한 동료 기자들의 얼굴을, 강사의 눈과 입을 초지일관 응시했다. 실시간으로 원격 영상강의가 가능한 시대에, 꼿꼿한 청중의 형형한 눈빛을 마주할 때마다 그들의 침묵에서도 배운다. 기자들은 영상을 통해 청중이 발현할 수 있는 힘의 크기를 스스로 구현했다. 깊은 경의를 표한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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