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전문연구위원, (사)소비자시민모임 감사 |
필자는 꽃을 참 좋아한다. 철마다 나무에서 무더기로 피는 꽃들도 예쁘지만, 산이나 들에서 다소곳이 피었다 사라지는 야생화를 더 좋아한다. 눈이나 얼음을 뚫고 가장 먼저 노란 꽃을 피우는 복수초를 비롯하여 노루귀, 바람꽃, 앵초, 구슬봉이, 할미꽃, 현호색, 사철란, 동자꽃, 은방울꽃, 초롱꽃, 매발톱꽃, 금낭화, 제비꽃, 까치수염, 둥굴레, 돌단풍, 처녀치마, 각시붓꽃, 달맞이꽃, 범부채, 구절초, 개미취, 기린초, 금계국, 하늘나리, 메꽃, 노루발, 타래난초, 맥문동, 큰꿩의비름, 용담, 상사화, 꽃무릇 등 그래도 만나본 야생화가 제법 된다. 야생화를 보고 있노라면 생명의 기운이 움튼다. 야생화는 위로라도 해주듯, 때가 되면 어김없이 그 자리에 와 있다. 꽃은 보기만 해도 미소가 절로 난다. 그 순간은 정말 행복하다.
봄을 처음 알리는 전령은 꽃이다. 누구나 꽃을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기에 기념일이나 중요한 날에는 꽃을 선물하지 않던가. 사랑을 고백할 때에도 어김없이 꽃다발이 등장한다. 전부터 궁금한 게 있었다. 왜 여성에게만 꽃을 선물하는지. 남성도 특히 나 같은 경우엔 꽃을 받으면 너무 좋은데, 시상식 외에는 꽃을 받아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그래서 매해 봄이 되면 아내와 함께 화분 너댓 개를 들고 단골 도매 꽃집으로 가서 여러 종류의 호접란을 직접 골라 심어 온다. 그러면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두세 달 동안 실내에서 예쁜 꽃을 감상할 수 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이름을 가진다. 가까운 지인이든 작명소를 통해서든 부모님으로부터 받는다. 하지만 부모님이 주신 이름 석 자 값도 제대로 못 하면서, 어리석게도 아직 호(號)를 찾아 헤매고 있다. 어렴풋이 마음속으로 하나를 정해 놓긴 했다. 그러나 이것도 다 부질없는 욕심이며 마음을 온전히 내려놓지 못한 반증이다. 사람에겐 누구나 정해진 인연의 시간이 있다. 아무리 끊으려 해도 이어지고, 아무리 이어가려 해도 끊어진다. 그렇기에 인연의 시간을 무시하고 억지로 이으려 하면, 그 순간부터 인연은 악연이 된다. 인연과 악연을 결정하는 건 오로지 자신이 선택한 타이밍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하나의 광대한 꽃밭이다. 이 꽃밭에는 형형색색의 꽃들이 정성스레 심겨 있다. 피부색이 다르고 생활양식이 제각각인 인간들이다. 하지만 개개인이 다 소중한 존재다. 저마다의 아름다움으로 멋진 세상을 가꾸라고 이 땅에 뿌리내리게 한 것이다. 나무가 잘 자라고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토양이 비옥해야 한다. 예쁜 꽃을 피우려면, 햇볕 좋은 날도 비 내리는 날도 있어야 한다. 이 세상에는 특별한 사람보단 보통 사람이 훨씬 더 많다. 이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성실하게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다. 아무리 평범한 '나'도 내 삶 속에서는 엄연한 주인공이지 않은가.
불현듯 언제부턴가 "억지로 찾아 헤매는 호보다는 더 소중한 게 꽃말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과연 '나'의 꽃말은 무엇일까? 나이가 들어갈수록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던데, 한마디로 내세울 내 꽃말은 갖고 있는가. 늦었지만, 내 인생을 가장 잘 함축하고 내 삶의 본질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꽃말을 찾아야겠다. 진정 '나'라는 사람의 꽃말이 오래 기억되고 향기롭기를 소망한다면, 하루하루를 더 소중하게 보낼 수 있을 듯하다. 욕심일지라도, 많은 이들에게 그리운 사람으로 남아 소중한 인연으로 오래도록 기억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전문연구위원·(사)소비자시민모임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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