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엔테크는 전통적인 기술기업과는 궤를 달리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사내에 기초과학 연구를 장려하고 그 결과는 논문으로 발표해 널리 공유한다. 이처럼 근본적인 것에서 출발해 기존 시장을 흔들 만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는 기업을 '딥 테크(deep tech)'라고 한다. 성공하기까지 오랜 세월과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고 중도에 위험 요소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와 같은 기업을 지원하는 기금이 점차 불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mRNA 백신의 원리는 무척 간단하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유전정보를 가진 mRNA를 주사하면 우리 몸 안에서 코로나바이러스를 이루는 단백질, 대표적으로 스파이크 단백질이 만들어진다. 이를 상대로 인체의 면역체계가 미리 훈련할 기회를 얻는 것이다.
그러나 mRNA로 의약품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그 이유 중 하나는 mRNA가 우리 몸속에 들어오면 약효를 발휘하기 전에 빠르게 분해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쉽게 분해되지 않도록 다른 물질로 '포장'을 하곤 한다. 그런데 이것이 간단하지 않다. 바이오엔테크가 개발한 코로나 백신에는 '포장재'로서 지질 나노입자를 사용하는데, 지질 나노입자를 여러 겹으로 고르게 둘러싸는 것이 최첨단 기술이라고 한다. 바이오엔테크는 고맙게도 이 '최첨단 기술'을 개발한 과정을 논문을 통해 일부 공개하고 있다.
마인츠의 바이오엔테크 본사에서 몇 시간 거리에 있는 대도시 뮌헨의 근교에는 고성능의 연구용 원자로가 있다. 이 연구용 원자로는 세계 유수의 공과대학인 뮌헨공대에서 보유한 것으로, 몇 겹이 됐든 지질 나노입자를 관찰할 수 있게 해 주는 중성자 산란장치가 다양하게 갖춰져 있다. 중성자 산란장치는 빛 대신 연구용 원자로에서 나오는 중성자를 사용하며 현미경의 역할을 하는 과학 도구다. 다만 이때 한 꺼풀씩 벗기지 않고도 한 겹 한 겹 관찰하는 마법 같은 일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 중수소 치환이라는 기술이다. 중수소는 수소의 동위원소로, 수소의 원자핵이 양성자 하나인 데 반해 중수소는 원자핵이 양성자 하나와 중성자 하나로 돼 있다. 중수소는 화학적으로는 수소와 거의 똑같아 구별이 어렵지만, 중성자에만은 전혀 다르게 보인다. 따라서 지질 나노입자를 이루는 수소 중 일부를 중수소로 치환하면 그 부분만 색이 다른 것처럼 또렷이 관찰할 수 있다. 바이오엔테크는 이런 방법을 사용해 지질 나노입자 기술을 빠르게 고도화할 수 있었다.
이런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고성능의 연구용 원자로와 중성자 산란장치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 곳곳에 있으나 여기에 더해 중수소 치환까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세계적인 규모의 중성자 연구시설을 보유한 이웃 나라 일본만 해도 중수소 치환에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세계 최초의 mRNA 백신이 기초과학이 탄탄한 독일에서 개발된 것에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영국에 본사를 둔 아스트라제네카도 mRNA 의약품 개발을 위해 최근 뮌헨공대의 연구용 원자로 이용을 신청했다고 한다. 딥 테크 시대에는 감염병 대응은 물론 파괴적 혁신을 꿈꾸는 대학과 기업에 이와 같은 기초과학 연구시설이 비밀 무기가 되고 있다.
박승일 한국원자력연구원 융복합양자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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