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예사 채용 때부터 전시기획은 물론 부수적인 업무 처리까지 자격항목에 명시하는데다, 구체화하지 못한 업무분장으로 '일당백'을 소화해야 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관행처럼 지속했다는 것이다.
대전시립미술관은 학예실로 뭉뚱그려 실장 포함 총 9명이 전시기획을 비롯해 교육홍보, 교류, 수집연구, 소장품 관리 등 시설을 제외한 모든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올해 11건의 기획전시를 이끌어야 하는 상황에서 컨서베이터 학예사와 학예실장을 제외한 7명의 학예사가 모두 추진해야 한다. 통상 1인 1 전시 기획 체재를 지향하는 타 시도와 비교하면 현저히 많은 업무량이다.
문제는 이마저도 절반이 넘는 5명은 비정규직이라는 점이다.
이로 인해 업무 과부하가 걸리고, 비정규직이라는 신분적 불안감으로 갑질 사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전관에만 상주하는 한 명의 컨서베이터 학예사 역시 당장 내달 진행하는 특별전과 관련 125점의 작품을 체크, 보존, 관리, 복원 등의 업무 일체를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반면, 올해 10건의 전시를 기획하는 부산시립미술관은 학예실장 포함 총 12명의 학예사가 상주해 1인당 업무 과중을 분산시켰으며, 서울시립미술관도 학예연구부 산하 전시과, 국제교류팀, 교육홍보과, 수집연구과로 세분화했다.
지난 2010년에 건립된 대구미술관은 학예실을 중심으로 수집연구, 전시기획, 교육 세 분야로 나눠 총 10명의 학예사를 배치했다. 게다가 타 도시의 시립미술관에는 없는 홍보마케팅팀을 설치해 5명의 전문인력을 상주시켜 비대면 전환을 겨냥해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대전과 규모가 비슷한 광주광역시시립미술관은 총 4개의 전시관 중 본관에만 학예사 10명이 근무하고 있다. 업무분장의 경우 학예연구실과 교육창작지원과로 구분해 전시기획과 교육프로그램 업무를 나눠 전문성을 높였다.
지역의 학예 관계자는 "갑질을 경험하더라도 직업 만족도와 생계 등의 이유로 쉽사리 문제를 제기할 수 없다"라며 "일을 하면서 현상보다는 서로 간 신뢰와 믿음이 깨질 때 가장 고통스럽고, 좌절감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학예 관계자는 "인력에 여유가 생기면 그만큼 전시 기획에 집중할 수 있어 질적인 면에서 시민들에게 수준 높은 전시를 선보일 수 있다"라며 "학예 업무 특성상 고유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직업군이라는 점에서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게 중요하다"라고 지적했다.
한세화 기자 kcjhsh99@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