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미 정치행정부 팀장 |
뜻이 모호하고 해석의 여지가 분분한 현대미술보다는 메시지가 분명한 고전회화가 좋다.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이 걸린 미술관을 하루 종일 걷게 한다 해도 나는 기꺼이 즐거워할 거다.
한 줄의 가사에서도 철학적 사유가 느껴지는 예전 음악이 좋다. 뭣 모르고 들었던 비틀즈나 U2, 오아시스나 콜드플레이의 노래는 그때나 지금이나 내 감성을 끌어 올리는 힘이 있다. 요즘은 잠들기 전 Ben E king의 'stand by me'를 간혹 듣는데, 전주부터 마음을 간질이는 특유의 60년대 멜로디가 매력적인 명곡이다.
흔히 유행하는 트렌디한 드라마도 좋지만, 주기적으로 찾게 되는 건 시대극이나 고전이다. 주로 영국 고전 드라마를 돌려보는데, 19세 말 시대의 고전풍은 늘 눈길을 사로잡는다.
어쩌면 감성적 편식일지도 모르겠다. 다양성을 존중하며 다방면의 문화를 즐기고 향유하지만, 정작 내 무의식이 받아들이는 건 아날로그적 감상을 자극하는 콘텐츠임을 부인할 수 없다.
아날로그에는 기다림이라는 전제가 깔린다. 전화나 카톡으로,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으로 내 의도를 보여주기만 하면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요즘 시대와는 정반대의 세상이다. 한 줄 뿐인 편지 한 통이 내게 오는 시간의 서사가 감동적인 것처럼, 언제 올까, 골목 어귀를 서성이던 뒷모습이 주는 여운처럼 무언가를 간절히 기다린다는 것은 약간의 설렘과 약간의 두려움 그리고 마침내 맞이하게 되는 기쁨으로 온전히 내 안에 머문다.
2006년 출간했던 이어령 교수의 '디지로그(digilog)'를 스무 살이 갓 넘은 당시의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디지털에 익숙한 세대였으므로 초침이 움직이는 시계나 필름 카메라 정도만이 아날로그라고 이해했던 무식함이 원인이었다.
디지털로 인해 세상이 잠식된다 해도 인간은 그 속에서 설렘이나 감동을 느낄 수 없다. 이 간극은 결국 아날로그 감성을 찾게 하는 원초적 힘이다. 레트로(retro)가 다시 유행하는 것도 우연은 아닐 거다. 이어령 선생이 보여주고자 했던 핵심은 결국 나처럼 감성적 편식도 말고, 디지털 문명에 쏠리지도 말고 융복합 시대가 원하는 '디지로그형' 인간이 되라는 가르침이었나 보다.
이해미 정치행정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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