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석 소장 |
처음엔 나의 학창시절 경험을 떠올려 봤다. 필자가 다닌 학교는 아주 오래전에 폐교된 충남의 작은 농촌마을에 있는 학교였다. 그때는 교무실 청소는 일도 아니었다. 늦가을 아침엔 등교하자마자 운동장을 둘러싸고 있는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에서 떨어진 내 얼굴 만한 낙엽을 쓸어내는 일이 학교의 첫 일과였다.
겨울이 오기 전 우리는 선생님의 인솔하에 각자 비료 포대 하나씩을 들고 학교 뒷산으로 향했다. 겨울철 난로에 때울 땔감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산에서 솔방울과 마른 나무 그루터기를 한가득 담아 학교 뒷켠에 있는 커다란 창고 안에 쏟아 부었다. 봄철엔 학교 근처 농가에 모심기 지원을 나가고 체육시간엔 운동장의 돌멩이를 줍는 것부터 시작했던 기억들을 떠올렸다. 교무실 청소는 이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나의 경험, 과거의 사례가 아닌 전문가의 의견과 일찌감치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타 시·도의 사례를 참고하고, 인권의 시각과 기준에서 바람직한 방향이 어떤 것인지를 고려할수록 분명 문제가 있어 보였다.
진정이 제기된 해당 학교에서는 교무실뿐 아니라 교장실과 행정실, 성적처리실, 학교지킴이실 등의 청소도 학생에게 배정하고 있었다. 대전시의 다른 학교에서도 상당수가 유사하게 운영하고 있었다.
해당 학교와 교육청은 청소도 교육활동의 일환이고, 학급 교실뿐만 아니라 학교라는 공간은 학생들의 교육활동에 포괄적으로 활용되는 공간이므로 학생들과 무관하지 않고 그렇기에 학생들이 이러한 공간을 청소하는 것은 교육활동과 무관하지 않다고 했다. 물론 학교 교육의 역할이 단순히 지식의 습득에 있는 것이 아니고 다양한 교육활동을 통해 바람직한 인성과 생활습관을 형성하도록 하는 것이며 자신이 사용한 공간의 정리와 청소를 하도록 지도하는 것도 교육활동에 포함될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의 직접적인 활동공간과 관련이라고 보기 어려운 학교 공간에 대해 학교가 학생을 위한 공간이라는 명분으로 강제적으로 학생에게 청소를 배정하는 것은 학생들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지난 2월초에 해당 학교와 교육청에 개선을 권고했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관행을 한 번에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고, 가뜩이나 학생지도와 각종 행정업무 처리 등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는 교사들이 직접 교무실 청소를 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교사의 업무 범위에 속한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에 개선 방안으로 청소시간을 교내봉사 시간으로 인정해주면서 학생들의 자발적 신청을 받아 청소를 배정하는 방법과 장기적으로는 청소 용역 예산을 마련하는 방안도 같이 제시했다.
해당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자 예상했던 대로 교원단체의 항의 성명과 일부 교사나 시민들의 항의 전화와 글이 쏟아졌다. 대부분 학교의 현실을 잘 모르고 한 결정이라거나 아이들의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성향을 강화하게 된다는 것이 주된 항의 내용이었다.
위원회의 권고에 대해 해당 학교는 올년 1학기부터 교무실 등의 청소를 자원봉사자 활용과 학생들의 자발적 신청, 교내봉사 시간을 인정하는 방법으로 개선했다. 또한 대전교육청은 일선 학교에 개선 방안을 마련하도록 했다.
광주광역시교육청도 5월 초에 일선 학교에 교무실 등 교직원 사용 공간의 청소를 학생들에게 강제 배정하지 말도록 하는 지침을 시달했다고 한다. 필자가 학창시절 학교에서 땔감을 마련하고 운동장의 돌멩이를 줍던 얘기가 지금은 '라떼는 말이야'의 소재가 되는 것처럼 교무실 청소도 머지않아 '라떼'의 소재가 될 것으로 예상해본다.
김재석 인권위원회 대전인권사무소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