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으로]가상화폐, 다단계 사기, 영끌 패닉

  • 오피니언
  • 세상속으로

[세상속으로]가상화폐, 다단계 사기, 영끌 패닉

김재석 소설가

  • 승인 2021-05-31 08:19
  • 신성룡 기자신성룡 기자
2021041901001455500067851
김재석 소설가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길은 막다른 골목이 적당하오)/제1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중략)…… 제13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13인의 아해는 무서운 아해와 무서워하는 아해와 그렇게 뿐이 모였소. (다른 사정은 없는 것이 차라리 나았소)

이상의 시 '오감도'(1934년 발표)는 지금 읽어도 오금이 저린다. 당시엔 낯설게 느껴졌을 초현실주의 기법뿐만 아니라 일제식 조선 청년의,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린 조선 청년의 무의식적 공포감이 녹아있다.

요즘 눈만 뜨면 가상화폐에 관한 기사가 신문을 도배한다. 대장주인 비트코인이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4월까지 한 개의 비트코인이 6만4천 달러를 찍더니 5월 들어서는 3만5천 달러까지 떨어졌다. 아무리 가상화폐라지만 이게 화폐야, 투자야, 투기야 하는 말들이 인터넷을 들썩거린다. 각국 중앙은행이 준비하는 디지털 화폐가 나오면 가상화폐는 99% 사라질 것이란 말들도 있다.



문제는 N포세대인 청년들이 이 가상화폐 광풍에 편승해서 영끌(영혼까지도 끌어와서) 투기를 하고 있다는 데 있다. 어떤 청년은 집도 포기하고, 결혼도 포기하고, 직장도 포기한 세대에게 마지막 남은 비상구라는 표현을 했다.

잘 아는 청년이 필자에게 와서 한국문화콘텐츠로 미국의 넷플릭스와 같은 OTT(온라인동영상 서비스) 회사를 만들려는 블록체인 기반의 회사에 투자하라고 권유했다. 그 회사 코인은 지금 가상화폐 3대 거래소에서 거래되기 때문에 바로 현금화할 수도 있고, 투자금에 따라 매달 3%, 5%, 7%의 수익금을 코인으로 준다고 했다. 한 사람씩 소개할 때마다 100%의 수익금과 소개자가 밑으로 내려갈수록 막대한 수익금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이런 사업이 어디 있겠느냐고 들떠있었다.

불현듯 필자가 젊은 날 경험했던 암웨이, 허벌라이프, 뉴스킨 등 한때 광풍처럼 불었던 다단계 판매회사들이 떠올랐다. 단순 입소문이 아닌 가입시킨 사람에 따라 기하급수적인 판매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해서 너도나도 달려갔었다.

필자도 만약 그때 다단계 회사에 가입해서 매달 월급을 집어넣으며 부업으로 열심히 했으면 지금 부자 소리를 듣고 있을까? 아마 집에 팔지도 못하는 물건만 한방 가득 찼을 거라는 데는 동의한다. 지금의 가상화폐 다단계 회사는 그냥 인터넷상에만 존재하는 코인을 수익으로 지급한다고 한다.

그런데 거래가 중지되면 가상화폐는 흔적도 없이 날아간다. 어떤 가상화폐 다단계 회사는 몇백만 원의 선금을 넣고 하루 동영상을 3시간 이상 시청하면 매일 4만 원씩 365일을 입금해 준다며 사기를 치다 결국 거래가 중지되었다. 필자 주위에도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피해자 모임을 만들어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이상의 시에서 본 막다른 골목으로 달리는 아해(청년)들의 무의식적 공포감이 느껴졌다. 나라 잃은 청년과 다단계 판매자들, 지금 N포 세대가 겪는 무기력한 공포감이 겹쳐졌다.

비트코인이란 가상화폐가 처음 나왔을 때는 중앙집권화된 금융시스템에 거부감과 회의감을 가진 사람들이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서 개인 간 거래가 가능하도록 분산형 금융시스템을 만들고자 하는 정의감이 있었다. 한마디로 미국중앙은행의 금융시스템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이제 10여 년이 흘러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는 전성기를 맞았지만, 정의가 사라진 가상화폐 시장은 더욱 혼탁해지고, 각국 정부가 디지털 화폐로 전환을 꾀하면서 풍전등화와 같은 운명을 맞이하고 있다. 사실 인터넷이란 장롱 속에 처박아 놓고 거래가 되지 않는 화폐는 범죄자산 은닉처나 투기 자산 이외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김재석 소설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2024 결산] 대전시 해묵은 현안해결 경제부흥 견인
  2. 대전시, 경제성장률 가파른 상승 "눈에 띄네"
  3. "서산 부석사 불상 친견법회, 한일 학술교류 계기로"
  4. 색채의 마술사 ‘앙리 마티스’ 대전서 만난다
  5. 대전 학교 내 성비위 난무하는데… 교사 성 관련 연수는 연 1회 그쳐
  1. 2023년 대전·세종·충남 전문대·대학·대학원 졸업생 취업률 전년比 하락
  2. ‘거긴 주차장이 아니에요’
  3. ‘달콤해’…까치밥에 빠진 직박구리
  4. [사설] '대한민국 문화도시' 날개 달았다
  5. [사설] 교육 현장 '석면 제로화' 차질 없어야

헤드라인 뉴스


학교 성비위 끊이지않는데… 교사 예방연수는 연 1회뿐

학교 성비위 끊이지않는데… 교사 예방연수는 연 1회뿐

대전 내 학교 성비위 사건이 잇따르는 가운데 개선은커녕 공회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대전교육청이 교사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성 관련 예방연수 횟수는 연 1회에 그치고 연중 발표하려 했던 성 비위 근절 대책안도 내년으로 미뤄졌기 때문이다. 26일 대전교육청에 따르면 현재 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성 관련 예방 교육시간은 연 1회 3시간뿐이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 관련 예방교육 이수시간이 1년에 15시간인 것에 비하면 매우 적은 상황이다. 올해 대전 내 학교에서 교사가 학생을 대상으로 한 성 비위 사건 중 공론화된 건은 초·중·고 1..

AI 디지털 교과서 논란...전국 시도교육감 엇박자
AI 디지털 교과서 논란...전국 시도교육감 엇박자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 명의의 건의문이 17개 시·도 간 입장 조율 없이 제출돼 일부 지역의 반발을 사고 있다. 최교진 세종시교육감은 12월 26일 이와 관련한 성명을 통해 "우리 교육청은 그동안 AI 디지털 교과서의 현장 도입에 신중한 접근을 요구해왔다. 시범 운영을 거쳐 점진적으로 도입하자는 의견"이라며 "AI 디지털 교과서를 교육자료로 규정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찬성한다"란 입장으로 서두를 건넸다. 이어 12월 24일 교육감협의회 명의의 건의문이 지역 교육계와 협의 없이 국회에 제출된 사실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맑은 날씨에 대전 해넘이·해돋이 둘다 볼 수 있다
맑은 날씨에 대전 해넘이·해돋이 둘다 볼 수 있다

12월 31일과 2025년 1월 1일 오전까지 대전은 대체로 맑은 날씨를 보여 올해 마지막 해넘이와 새해 첫 해돋이를 감상할 수 있겠다. 기상청은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연말연시 날씨 전망을 26일 발표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오는 1일 오전 주요 도시별 해돋이 시간은 독도 7시 26분, 부산 7시 32분, 대구 7시 36분, 제주 7시 38분, 강릉 7시 40분, 광주 7시 41분, 대전과 청주, 전주 7시 42분, 서울은 7시 47분께다. 이날 오전 충청권은 대체로 맑지만, 충남 서해안 주변 일부 지역은 구름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달콤해’…까치밥에 빠진 직박구리 ‘달콤해’…까치밥에 빠진 직박구리

  • 색채의 마술사 ‘앙리 마티스’ 대전서 만난다 색채의 마술사 ‘앙리 마티스’ 대전서 만난다

  • 즐거운 성탄절 즐거운 성탄절

  • ‘거긴 주차장이 아니에요’ ‘거긴 주차장이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