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석 소설가 |
……(중략)…… 제13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13인의 아해는 무서운 아해와 무서워하는 아해와 그렇게 뿐이 모였소. (다른 사정은 없는 것이 차라리 나았소)
이상의 시 '오감도'(1934년 발표)는 지금 읽어도 오금이 저린다. 당시엔 낯설게 느껴졌을 초현실주의 기법뿐만 아니라 일제식 조선 청년의,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린 조선 청년의 무의식적 공포감이 녹아있다.
요즘 눈만 뜨면 가상화폐에 관한 기사가 신문을 도배한다. 대장주인 비트코인이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4월까지 한 개의 비트코인이 6만4천 달러를 찍더니 5월 들어서는 3만5천 달러까지 떨어졌다. 아무리 가상화폐라지만 이게 화폐야, 투자야, 투기야 하는 말들이 인터넷을 들썩거린다. 각국 중앙은행이 준비하는 디지털 화폐가 나오면 가상화폐는 99% 사라질 것이란 말들도 있다.
문제는 N포세대인 청년들이 이 가상화폐 광풍에 편승해서 영끌(영혼까지도 끌어와서) 투기를 하고 있다는 데 있다. 어떤 청년은 집도 포기하고, 결혼도 포기하고, 직장도 포기한 세대에게 마지막 남은 비상구라는 표현을 했다.
잘 아는 청년이 필자에게 와서 한국문화콘텐츠로 미국의 넷플릭스와 같은 OTT(온라인동영상 서비스) 회사를 만들려는 블록체인 기반의 회사에 투자하라고 권유했다. 그 회사 코인은 지금 가상화폐 3대 거래소에서 거래되기 때문에 바로 현금화할 수도 있고, 투자금에 따라 매달 3%, 5%, 7%의 수익금을 코인으로 준다고 했다. 한 사람씩 소개할 때마다 100%의 수익금과 소개자가 밑으로 내려갈수록 막대한 수익금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이런 사업이 어디 있겠느냐고 들떠있었다.
불현듯 필자가 젊은 날 경험했던 암웨이, 허벌라이프, 뉴스킨 등 한때 광풍처럼 불었던 다단계 판매회사들이 떠올랐다. 단순 입소문이 아닌 가입시킨 사람에 따라 기하급수적인 판매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해서 너도나도 달려갔었다.
필자도 만약 그때 다단계 회사에 가입해서 매달 월급을 집어넣으며 부업으로 열심히 했으면 지금 부자 소리를 듣고 있을까? 아마 집에 팔지도 못하는 물건만 한방 가득 찼을 거라는 데는 동의한다. 지금의 가상화폐 다단계 회사는 그냥 인터넷상에만 존재하는 코인을 수익으로 지급한다고 한다.
그런데 거래가 중지되면 가상화폐는 흔적도 없이 날아간다. 어떤 가상화폐 다단계 회사는 몇백만 원의 선금을 넣고 하루 동영상을 3시간 이상 시청하면 매일 4만 원씩 365일을 입금해 준다며 사기를 치다 결국 거래가 중지되었다. 필자 주위에도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피해자 모임을 만들어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이상의 시에서 본 막다른 골목으로 달리는 아해(청년)들의 무의식적 공포감이 느껴졌다. 나라 잃은 청년과 다단계 판매자들, 지금 N포 세대가 겪는 무기력한 공포감이 겹쳐졌다.
비트코인이란 가상화폐가 처음 나왔을 때는 중앙집권화된 금융시스템에 거부감과 회의감을 가진 사람들이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서 개인 간 거래가 가능하도록 분산형 금융시스템을 만들고자 하는 정의감이 있었다. 한마디로 미국중앙은행의 금융시스템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이제 10여 년이 흘러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는 전성기를 맞았지만, 정의가 사라진 가상화폐 시장은 더욱 혼탁해지고, 각국 정부가 디지털 화폐로 전환을 꾀하면서 풍전등화와 같은 운명을 맞이하고 있다. 사실 인터넷이란 장롱 속에 처박아 놓고 거래가 되지 않는 화폐는 범죄자산 은닉처나 투기 자산 이외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김재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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