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류층의 잔디밭에 내리던 잔잔한 비는 낮은 곳으로 흐르고 흘러, 하류층에서는 재난이 됐다.
누군가에게는 텐트속 추억을, 누군가에는 끔찍한 악몽이 되기도 했던 비를 통해 영화는 '명징하고 처연하게' 계급의 현실을 보여준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가 전 세계를 휩쓸면서 복지제도의 사각지대 속에서 빈곤 인구가 방치되거나 고독사하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다.
수용할 수 있는 한계치를 넘은 병원에서 환자들은 방치되고, 눈덩이 같은 의료보험비를 감당하지 못해 그대로 죽어만 간다.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결식 아동들은 그대로 방치됐고, 택배 노동자가 업무량을 견디지 못해서 길에서 쓰러지는 일도 허다하게 발생한다.
기생충에서의 '비'가 현실세계에서 '코로나19'로 바뀌었을 뿐 우리의 상황은 크게 다를바 없는 셈이다.
지난 2017년 부터 '더 케어 컬렉티브(The Care Collective)'라는 이름으로 돌봄 문제를 연구하던 학자 다섯명이 최근 수십년간 심각해진 돌봄의 부재에 대한 책을 펴냈다.
'돌봄선언'은 "재난의 위험은 불균등하게 분포되고, 소수자와 취약계층에게 이 위험은 생존의 위협으로 다가온다"며 '거시적 차원에서의 보편적 돌봄'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책은 개인간의 관계에서 시작해 페미니즘, 퀴어, 반인종차별주의, 생태사회주의를 아우르는 대안을 모색하며 '보편적 돌봄'을 제안한다.
돌봄을 '가족' 단위의 문제가 아닌, 지역공동체, 공공공간, 지역민주주의 등 사회적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같은 맥락에서 책은 단순히 가족간의 돌봄이나 돌봄시설, 병원 종사자들의 직접적인 돌봄 등 직접 누군가를 보살피는 '대인 돌봄'에서 더 나아가 교사들이 학교에서 수행하는 돌봄, 필수 노동자들이 제공하는 일상적 서비스, 사물도서관, 협동조합 형태의 대안경제나 연대경제 등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이념과 활동에 참여하는 '정치적 돌봄'도 '돌봄'의 범주에 넣고 있다.
책을 쓴 더 케어 컬렉티브는 2017년 영국 런던에서 학술 모임으로 시작한 단체로 안드레아스 차지다키스(Andreas Chatzidakis), 제이미 하킴(Jamie Hakim), 조 리틀러(Jo Littler), 캐서린 로튼버그(Catherine Rottenberg), 린 시걸(Lynne Segal) 등이 참여하고 있다.
오희룡 기자 huily@
*'올랑올랑'은 가슴이 설레서 두근거린다는 뜻의 순 우리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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