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현숙 이응노연구소장 |
'거장, 중원을 거닐다'전은 작년 10월부터 올 4월 초까지 천안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충남 출신 작가들을 조명한 '낯익은 해후'전의 바톤터치 전시라고도 할 수 있다. 아라리오갤러리의 소장품으로 구성된 '낯익은 해후'전은 회화, 조각, 사진, 영상, 설치 등 전 장르를 망라하여 충남 출신 작가 21명의 작품을 전시했다. 두 전람회의 출품작가 외에도 대전 출신의 조각가 최종태, 한국화가 이종상, 섬유미술가 송번수, 화가 김홍주가 있고, 옥천 출신으로 빛의 화가 하동철이 있다. 옥천 출신은 아니지만 옥천 산골에 칩거하여 디지털 산수화를 제작한 황인기를 비롯하여 원로급 현역 작가들 수도 만만치 않다. 유명 작가는 모두 중앙 화단에서 활동하는 서울권 미술가라는 인식이 지배적인 것은 문화의 서울 편중 현상이 아직 해소되지 못한 탓이 크다.
고암 이응노가 대전 교도소에 복역했을 당시 간장과 고추장을 재료로 제작한 작품들, 이응노가 운영했던 수덕여관과 김두환의 작업실에 잠시 거처를 두기도 했던 나혜석의 발자취를 비롯하여 수덕사를 오간 수많은 미술 문학 종교계 인사들, 청주의 3인방이라 할 수 있는 윤형근과 무소유 철학수필가 민병산과 시인 신동문이 벌인 일탈적 일화들, 대전 미술계의 스승인 이동훈, 예산에서 작업을 했던 김두환, 괴산 작업실에서 걸작을 산출해낸 황창배, 서울 대학로에 인공갤러리를 열어 미술계의 신화가 된 황현욱이 대전에 비비 스페이스(bibi space)를 열고 개관전으로 윤형근전을 개최한 후 곧바로 암으로 사망했고 지금은 그의 부인이 그 건물에 레스토랑과 전시장을 운영하는 등 중부권 문화 콘텐츠의 양과 갈래는 다양하고 역동적이다. 이러한 미술문화계의 인적 동선과 일화와 장소들을 엮어 스토리 텔링하여 활용한다면 그 잠재적 가치는 천문학적 수치에 달할 수 있다.
막강한 문화적 컨텐츠와 잠재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 미술관으로는 고암 이응노미술관이 거의 유일하고, 세종시에서 장욱진의 생가를 복원하고 기념관을 건립 중에 있을 뿐이니 중부권의 문화적 비전은 아직도 개명하지 못했다고 해야 할까? 양주시는 장욱진이 불과 10여년 작업하며 살았을 뿐인 인연을 부각시켜서 장욱진미술관을 개관했고, 그로 인해 양주 시민이 누리게 된 문화적 호사는 눈부시건만 정작 장욱진의 고향에서는 이제야 생가와 기념관 오픈을 예고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전에는 이응노의 국제적 위상과 비전을 펼쳐내는 이응노미술관과 대전시립미술관이 있고, 청주에는 청주시립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의 활동이 왕성하며, 최근 '공주문화재단'을 출범시킨 공주시는 '문화수도 공주'를 공표하며 큰 걸음을 내딛었다. 야투(野投)를 결성하여 한국 생태미술의 원조가 된 임동식과 그의 주위에 김동유, 이광복, 이순구, 윤희수 등 후배 작가들이 모여들어 터를 잡고 활동을 전개한 것이 '문화의 힘'을 외칠 수 있는 근간이 되었을 것이다. 지역 문화 콘텐츠가 문화 인프라로 실현됨으로써 지역 문화의 자생력이 튼튼해지고 나아가 중앙과 지방의 권력 위계가 붕괴되거나 역전되는 날을 기대해 본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