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필(경북도립국악단 상임지휘자) 대한민국 국·공립 예술단 국악지휘자 협회 초대 회장.<손도언 기자> |
이정필(60·경북도립국악단 상임지휘자) 대한민국 국·공립 예술단 국악지휘자 협회 회장은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국악의 소멸화'를 크게 우려했다. 그는 "국가가 나서지 않으면 우리의 정신문화인 국악은 결국 없어지게 된다. 물론 국악의 세계화도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국악은 그의 말처럼 '위기' 상황이다. 또 여러 장르에서 한참, 뒤 처져있다. 실제 엘리트 국악인들을 양성하는 대학교의 '한국음악과 폐과'는 가속화 중이고, 국악인재들은 트롯이나 대중음악으로 노선을 갈아타고 있다. 또 정부나 자치단체의 지원은 쥐꼬리 수준에 불과하고, 국악과 관련한 언론 등의 노출 빈도는 자치단체나 기관 보도 자료를 빼면 거의 '제로'에 가깝다. 게다가 국악인들의 불공정한 무형문화재 지정 갈등, 그리고 국악인들의 파벌과 소득 양극화 등은 국악의 소멸화를 부채질 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야말로 절체절명 '국악계의 위기'가 닥쳐온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관악과 현악, 소리 등 여러 분야의 기성 국악인들이 하나로 뭉쳤는데, 그들의 모임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기성 국악인들이 '국악의 소멸화'와, 이와 반대로 '국악의 세계화'라는 공감대 속에서 공동 대응에 나섰다. 서로 뜻을 함께한 기성 국악인들은 우리나라 국악계의 허리역할을 하고 있는 '국악의 대표적인 지휘자'들이다. 그 중심엔 이정필 경북도립국악단 상임지휘자가 있다. 뿐만 아니라 전국 국·공립 예술단 40여명의 국악지휘자가 이 지휘자와 뜻을 함께하고 있다. 이들은 올 2월말 충북 영동에서 '대한민국 국·공립 예술단 국악지휘자 협회'를 창립했다. 이정필 지휘자가 협회 초대회장을 맡았다. 협회는 국악의 지속화와 세계화·대중화, 젊은 인재 육성, 국악정책과 미래비전 제시 등을 창립 배경으로 삼았다.
최근 충북 영동군 민주지산 내 물한계곡 사계절캠핑장에서 이정필(지휘자) 협회 초대 회장을 만났다. 그에게 우리나라 전통음악, 즉 국악과 관련한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지 물어봤고, 국악의 세계화와 대중화에 대한 고민 등을 들어봤다. 50년 가까이 국악을 접했던 그다. 인터뷰는 2시간가량 진행됐다.
이정필(경북도립국악단 상임지휘자) 대한민국 국·공립 예술단 국악지휘자 협회 초대 회장.<손도언 기자> |
▶'대한민국 국·공립예술단 국악지휘자 협회'는 어떤 단체인가
"전국 국·공립 예술단 지휘자들로 구성된 단체다. 단체의 미션은 위기 속 국악을 다시 살려내고, 우리나라의 정신적인 국악을 세계화·대중화 시키는 게 가장 큰 목표다. 물론 분야별 국악인들의 장점을 하나로 모아, 세계 속 국악을 만들어가는 것도 목표 중 하나다."
▶협회가 국악과 관련한 모임 중에서 가장 큰 조직인 것 같다
"우리나라 국·공립 지휘자들이 거의 참여하고 있을 만큼 큰 단체다. 그래서 업무를 나눠서 운영하게 되는데, 전국 각 지역별로 1명의 수석부회장을 둘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서울·경기지역은 공연과 예술분야, 영남지역은 '대회 협력분야', 충청지역은 '저작권 관련분야', 전라지역은 '정책이나 학술분야'로 나눠진다. 앞으로 분과 위주로 운영돼, 짜임새 있게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협회 가 본 '가장 시급한' 문제는?
"국·공립단체와 국악 작곡가 간의 '악보 사용료' 문제인 것 같다. 전국 국·공립 단체는 공연을 할 때마다 곡당 20~50만원 안팎의 악보 사용료를 매번 작곡가한테 지불하고 있다. 곡을 잘 못 사용하면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예술단) 단체가 악곡 사용료 명목으로 많은 예산을 보유하고 있다면 문제될 게 없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작곡가의 노력과 희생은 충분하게 이해한다. 그러나 현실도 중요하다. 문제는 단체와 작곡가의 동반성장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야만 국악 전체가 상생할 수 있다. 이런 문제점을 작곡가 등과 만나서, 하나하나 풀어나갈 생각이다. 악보 사용료 문제뿐만 아니라 뿌리 깊은 국악의 잘못된 관행들을 조금씩 바꿔나갈 예정이다."
이정필(경북도립국악단 상임지휘자) 대한민국 국·공립 예술단 국악지휘자 협회 초대 회장.<경북도립국악단 제공>. |
▶국악의 현재 위치는 어디쯤인가
"한마디로 표현하면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예산문제부터 언론 노출 문제, 불공정한 국악계, 국악인의 양극화 등까지 위기에 직면해 있다. 가장 핵심인 국악 대중화는 어느 정도 이뤄졌다고 본다. 그러나 정부의 무관심 등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나라 국악은 미래가 없다. 국악의 세계화는 물론, 국악 자체가 사라질 만큼 위태로운 상황이다."
▶국악이 위기라고 했는데, 가장 큰 문제점은?
"정부의 무관심 일 것이다. 이젠 정부가 우리나라 국악을 더 발전시키고 세계화하는데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사실 전국 국·공립 예술단체의 운영과 공연은 해당 자치단체에서 예산을 대부분 지원한다.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자치단체가 어떤 사업을 추진할 경우 '국비+도비+시·군비' 등 많은 예산으로 사업을 진행시킨다. 국악도 마찬가지로 국비와 도비 등을 반영해 '정책적인 공연'을 추진해야만 우리나라의 가치를 담은 세계적인 공연을 만들 수 있다. 이는 곧, 국악의 세계화다. 서양음악과 우리나라 전통음악이 다른 점이다."
▶또 다른 문제점은 없는가?
"우리나라 중·고 음악교과서만 봐도 서양음악과 전통음악을 차별화하고 있다. 현재 서양음악과 전통음악 비율은 6대 4정도다. 예전에 비하면 전통음악 수치가 많이 올라온 편이지만 아직 멀었다. 서양음악과 전통음악이 편중된 것은 이미 다 알고 있다. 이런 부문만 봐도 국악이 얼마나 소외돼 있는 지 알 수 있는 부문이다."
이정필 상임지휘자(중앙)가 이끌고 있는 경북도립국악단.<경북도립국악단 제공>. |
▶그렇다면, 국악의 방향성은?
"조선시대 '장악원'은 우리나라 궁중 음악 등을 담당한 관청이다. 왕실의 직속 기관으로 운영돼 온 '왕립 음악기관'이다. 조선시대 이전 시대로 그렇게 운영됐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조선시대 장악원처럼 운영되고 있는 국립국악원은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소속이다. 한마디로 조선시대 음악기관과 현재의 음악기관의 '급'이 다르다. 그래서 국립국악원은 청와대나 국무총리실 산하 음악기관으로 둬야 한다. 조선시대 등에서 화려했던 국악이 현대화로 오면서 외면 받고 있는 증거가 아니겠느냐. 문화재청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이제는 문화재청이 '문화예술청'으로 조직을 현대화해야 한다. 현재의 문화재청 조직은 유·무형 문화재뿐만 아니라 예술부분까지 맡고 있는데, 문화제부와 예술부로 각각 나눠서 좀 더 세밀한 행정을 펼쳐야 한다. 예를 들면 문화제부는 유·무형 문화제만 하고, 예술부는 전국 시·도립 예술단 등의 전반적인 컨트롤 타워 역을 맡으면 되는 것이다."
▶'국악은 어렵다'라는 인식과 또 국민들이 국악에 대해 잘 모른다. 해결책은?
"언론과 방송사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현재 방송사의 국악프로그램은 단 1~2개 정도다. 흔히 말하는 3개 방송사가 국악프로그램을 늘려서 국악의 대중화에 앞장서야 한다. 언론에 보도되는 '국악 관련 기사'는 사실 전무하다. 다른 예술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보도다. 좋은 기사든, 비판기사든 언론 보도에 많이 노출돼야 국민들의 관심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중도일보의 100편짜리 '판소리 중고제 시리즈'같은 보도가 좋은 예다. 그래야만 대중적 관심을 끌 수 있다."
▶국악의 세계화, 희망은 있는가?
"물론 희망과 비전은 있다. 국악과 관련된 '이날치 밴드'가 현재 방송계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이것만 봐도 국악에 대한 발전가능은 높다. 예를 들면 이렇다. K-팝 문화가 세계시장을 장악했고, 세계 음악의 중심에 섰다. 이처럼 K-민요 등 전통음악이 갖고 있는 리듬과 멜로디, 정서 등을 적절하게 버무린다면 세계시장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이다. 또다른 예를 들면 이렇다. 전통적인 부분은 그대로 두고, 전통을 기반으로 한 대중적 국악을 만들어보자는 얘기다. 다양한 장르 속에서 새로운 'K-국악'이 탄생된다면 국악의 세계화, 현대화와, 그리고 대중화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정부의 관심이 있을 때 얘기다."
▶마지막 한마디?
"국악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국민적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 국악은 우리의 역사 등과 함께했다. 그리고 우리의 예술적 가치와 혼, 삶과 애환, 정서 등이 담긴 '우리의 전통음악'이다. 이제는 정부와 자치단체뿐만 아니라 국민적 관심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정부와 자치단체가 주도적으로 나서고, 언론 등이 함께 공유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된다면 '국악의 세계화'는 앞당겨 질 것이고 세계 속 전통음악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우리의 전통음악인 국악이 '역사에는 있는데, 현실에는 없는 음악'이 되지 않길 바란다. 우리 모두 함께 노력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제천=손도언 기자 k-55son@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