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출신의 중고제 판소리 명창 방응규 모습. 초기 판소리 명창 방만춘의 손자로 알려져 있다.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
조선창극사 31쪽 방만춘 명창 편 기록에는 이름은 안나오지만 방만춘의 손자에 대한 기록이 있다. 조선창극사는 '방만춘이 다듬었던 적벽가의 초고는 여러 사람의 다년 전독하는 동안에 파열돼 겨우 수장지편이 여존해 있고, 심청가는 그의 사손이 보존했다'고 기록했다. 이 기록의 방만춘 사손이 방진관 또는 방응규 명창일 가능성이 있다.
충남 해미 출신 방만춘 명창의 후손 방진관이 1936년에 녹음한 판소리 SP음반들이 1993년 노재명 판소리학자 고증에 의해 처음 밝혀져 이렇게 복각 음반으로 제작됐다.<국악음반박물관 소장> |
흥보가의 '제비 몰러 나간다'로 유명한 박동진 명창도 방만춘 사손에 대해 언급했다. 노 관장은 1995년 5월과 1999년 8월에 박동진 명창을 인터뷰했다. 박 명창은 당시 인터뷰에서 "방응규와 방진관은 같은 인물이 아니다. 방응규가 방만춘의 손자이고, 충남 해미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릴적 방응규의 소리를 들었는데, 그 자리에 함께했던 나이든 명창들이 그 소리를 고제, 충청도제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방응규가 춤을 추는 건 못 봤다는 게 박동진 명창의 증언이다. 노 관장은 1999년 11월에 정광수 명창과도 인터뷰를 했는데, 이 자리에서 방응규·방진관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고 밝혔다.
정광수 명창은 당시 인터뷰에서 "방진관은 잘 모르는 사람이고 한성준 명인 집에서 방응규 소리를 들어봤다. 방응규는 소리를 잘 했고, 특히 엇붙임을 특색있게 잘했다"고 설명했다. 또 "정광수 나이는 20대 말이었고, 방응규는 60대 노인이었다. 방응규는 심청이가 수궁에서 나올 때, '소상팔경(범피중류)'를 했다"고 말했다. 2010년 1월에 별세한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보유자 한승호(본명 한갑주) 명창은 방응규를 이렇게 기억했다.
한승호 명창에 따르면 방응규는 충청도 판소리를 했다. 한승호 명창은 "방응규는 평소 듣지 못했던 단가와 춘향가, 그리고 적벽가 중 '삼고초려' 대목을 하는 것을 본 적 있다. 그는 소리를 담백하게 불렀고, 소리를 맺고 끊지 않고 메조지(매듭)없이 사설을 계속 달고 나가는 식이다. 그래서 '얼씨구(추임새)' 할 데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노 관장이 1999년 11월에 한승호 명창과도 인터뷰를 했는데, 한승호 명창은 당시 인터뷰에서 이같은 내용으로 노 관장에게 말했다.
노재명 관장은 "한승호가 방응규 성음을 방창해 들려준 바 있는데 그 소리가 방진관의 판소리 유성기음반 녹음과 매우 유사했다. 한승호가 방응규의 적벽가 중 '삼고초려' 대목을 직접 들었다고 했고, '삼고초려'는 방진관이 유성기음반으로도 녹음한 바 있어서 방진관과 방응규는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있다"며 "만일 같은 사람이라면 본명과 예명 두 이름을 사용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초기 판소리 명창인 방덕희, 방만춘, 그리고 방응규, 방진관, 방봉관, 방만득, 또 심화영에게 춤을 가르쳐 준 방영래 명인은 충남 해미 쪽의 '국악 명가문'의 일가친척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학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제천=손도언 기자 k-55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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