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서둘러 아내와 아들 녀석을 앞장세우고 전나무 숲이 울창한 천년고찰을 찾은 것은 봉축법요식 연등을 달기 위함이었지요. '하나의 등불로부터 다른 수백 수천의 등불에 불을 옮겨주어도 원래의 불꽃은 줄어들지 않는다'라는 유마거사의 꺼지지 않는 '무진등' 법문이 불현듯 떠오른 건 평소 유발승(有髮僧)이라고 불러주시던 무원(務元) 스님과의 인연 때문이었습니다. 늘 좋은 일을 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무원 스님은 광수사 주지로 계시면서 '광수문학상'과 '광수사연가전국시낭송대회'를 개최하여 불교의 예술 대중화를 실천해 오신 분으로 지난 3월 천태종 종회 의장으로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처럼 시절 인연으로 떠나셨지요.
글 쓰는 일도 그러합니다. 어찌 5월의 장미에만 요염한 현기증으로 눈을 질끈 감고 연보라색 오동나무 꽃을 보면서 시집간 딸아이 생각에 가슴이 쿵쾅거리겠어요. 자연이나 피조물(被造物)의 과거 현재 미래를 정성 또는 정량 분석하여 필사하는 기록이 시의 본질이라면 일상의 경험을 수집하는 생각의 작업은 곧 삶의 영감을 찾아내 시를 성장시키는 나이테로 꽃은 이미 그 자체로 시간 공간 환경의 오브제가 되지요. 사실 필사는 우리가 책을 읽다가 주옥같은 명문장을 만나거나 화자의 메시지를 자신의 기억 저장소에 보관하는 방법이긴 하지만 사진 찍듯 외형의 아름다움에만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문장 전체의 신경계를 기록해야 합니다. 그러고 보니 두어 해 전 발간한 네 번째 시집 『낙관 한 점』을 지인과 문인들에게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택배 우편물을 받아보니 천숙녀 시인께서 제 시집에 수록된 시 44편을 꽃누르미 작품 120점으로 만들어 보내온 것이었습니다. 시집을 준 것조차 까마득히 잊고 지냈었는데 시인께서는 한편 한 편의 시에 일일이 꽃을 붙이고 잎을 달아 주셨으니 그 정성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지요.
천숙녀 시인은 '독도시인'으로 유명한 분입니다. 독도가 한일 간 중요한 이슈로 등장하기 전부터 시인은 독도사랑운동에 동참해 250만 명의 길거리 서명을 받았으며 독도시를 쓰고 '평화의 섬, 독도'를 낭송하였지요. 손수 한민족 독도사관을 설립해 독도사랑 국민운동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해온 시인입니다.
또한 꽃잎 풀잎 하나하나의 생김새가 서로 어울려 한 송이 꽃이 되고 줄기를 통하여 대지의 뿌리내리는 자연의 질서와 조화를 글 세계로 들여온 풀꽃 시인이며 행운의 네잎클로버를 전하는 꽃누르미 작가이기도 합니다. 꽃누르미는 식물의 꽃이나 잎, 줄기, 뿌리 등을 건조한 뒤 평면으로 구성한 꽃장식 예술로 압화(押花, Pressed flowers)라고도 불리지요. 우리 선조들은 늦가을이면 예쁜 단풍잎이나 은행잎 꽃잎들을 책 사이에 끼어 말렸다가 문창호지에 붙여 자연을 감상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상과의 경계에서 아름다워지는 것이 어디 꽃뿐이겠습니까만 사람의 마음은 일과명주(一顆明珠)와 같습니다. 부처님의 맑고 향기로운 상생과 화합의 지혜를 얻는 것은 두두물물(頭頭物物) 놓고 비우는 일이겠지만 하산하는 길, 제 시도 세상 풍경으로 나가 모든 세상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고 세상을 밝히는 무진등으로 켜졌으면 하는 욕심을 가져봅니다. /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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