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낙천 배재대 인문사회대학 학장 |
또한, 인간의 특성을 규정하는 여러 가지 학술용어 중에는 인간이 생각하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하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있다. 이는 인간이 생각의 주체라는 것인데, 인간의 위대한 생각의 힘은 제1차 산업혁명(증기기관 발명), 제2차 산업혁명(전기를 활용한 생산 확대), 제3차 산업혁명(컴퓨터와 통신 기술)을 통해 인류의 효율성을 높이고 생산량을 늘리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제는 인공지능 및 로봇공학과 빅데이터로 지칭되는 이른바 'ABC혁명(AI, Algorithm, Big Data, Cloud Computing)'을 통해 우리 삶의 총체적 변화를 가져오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한편, 인간이 거대한 자연 앞에서 연약한 존재이지만 자연을 지배하는 존재가 될 수 있었던 중요한 근거 중에 하나는 인간이 1,200~1,400cc의 뇌의 용량을 가지고 직립 보행을 하는 특성에서도 찾을 수 있다. 나아가 인간이 도구를 사용한다거나 문화를 창조하고 향유하는 존재라는 것도 인간의 특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인간의 특성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간이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언어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대표적이고 본질적인 요소인데, 이를 가리켜 호모 로퀜스(Homo loquens) 즉 인간은 언어적 존재이며, 이것이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언어와 관련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언어와 사고의 관계이다. 미국의 언어학자 사피어는 그의 제자 워프와 함께 '사피어-워프 가설'을 제기하였다. 이른바 '언어 결정설' 또는 '언어 상대설'로 불리는 이 가설은 언어가 사고를 결정한다는 것으로 언어 우위설의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모든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비슷하지만 언어를 통해 세계를 규정하게 됨으로써 서로 간에 인식의 차이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가설은 동일한 언어권에 사는 사람이 보여주는 일정한 정체성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는 점에서 언어학의 입장에서는 매우 매력적인 주장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언어가 사고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기는 힘들고 인간의 사고를 언어로 제한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논쟁거리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언어와 사고는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다른 한쪽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렵다. 어느 누구도 언어와 사고의 관계를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언어와 사고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을 뿐 이 둘의 우열 관계를 따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다만 인간은 언어를 통해 세상을 인식하고 해석하고 의미화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언어는 인간과 늘 함께 있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점에서 인간에게 있어 언어는 의사소통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나아가 인간은 언어를 부려 쓰면서 문화를 창조하고 발전·계승시키며 사회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언어를 실증하는 것은 곧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백낙천 배재대 인문사회대학 학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