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를 하면 우렁찬 통성으로 인해 집 천장에서 먼지가 다 떨어졌다는 동편제 거장 송만갑 명창 모습.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
근대 전설적인 김명환(일산(一山)·1913-1989) 판소리 고수는 이렇게 증언했다. '이날치 명창의 소리는 어디까지 들렸고, 송만갑 명창이 소리하면 집 천장에서 먼지가 떨어졌다. 장판개 명창이 소리를 지르면 방문 문고리가 흔들렸다'는 등이다.
판소리를 하면 엄청난 성량으로 방문 문고리가 흔들릴 정도였다는 동편제 대가 장판개 명창 모습.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
김명환 고수는 증언을 통해 "통성(아래 뱃속에서 바로 목으로 뽑아내는 성음)으로 하는데, 어떻게 체조를 헐 것이요"라고 말했는데, 크게 소리를 지르는 것도 바쁜데, 어떻게 잔 기교를 부릴 수 있겠냐는 것이다. 이처럼 큰 소리를 질러야하는 판소리 창법과 단순한 기교, 담백한 곡조는 초기 판소리, 즉 중고제의 특징 중 하나다. 청주에서 중고제 연구에 매진 중인 조동언 판소리 명창은 "초기 판소리 명창들은 지금처럼 마이크나 스피커 등의 음향시설이 없었던 시대에서 소리했다"며 "고음을 갖춘 소리꾼들이 야외 소리판에서 인기를 끌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조 명창의 말을 종합하면 야외무대에서 주로 활동했던 초기 판소리 명창들은 소리를 멀리까지 보내야했기 때문에 고음의 소리를 했고, 고음은 야외무대 소리판을 장악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호걸제와 덜렁제가 유행했다.
통성은 근대 명창들까지 영향을 줬고, 현재 소리 입문자들도 통성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반면 통성으로 불러야했던 시대를 감안하면 판소리 성음에 대한 잔 기교는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다. 노재명 판소리학자는 이에 대해 '김창룡과 중고제 판소리' 글(판소리 명창 김창룡·그 손녀 김차돈 1995년 CD 해설서)에서 다음과 같은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노 학자는 "기계 의존 없이 실내외에서 판소리를 해야 했던 옛 명창들은 붙임새나 장단 공부보다 소리를 우렁차게 내지를 수 있는 실력을 배양하는 데 가장 주력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권오성의 원담소리, 방덕희의 우레목통, 조관국의 한거성'이라는 기록과 '모흥갑의 덜미소리는 십리 밖까지 들렸다'는 기록 등이 그런 사실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천=손도언 기자 k-55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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