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가보지 않은 길 고교학점제

  • 오피니언
  • 세상보기

[세상보기] 가보지 않은 길 고교학점제

한기온 제일학원 이사장

  • 승인 2021-05-20 16:44
  • 신문게재 2021-05-21 19면
  • 김성현 기자김성현 기자
2021030401000469900017651
한기온 이사장.
고교학점제는 한 마디로 대학과 유사한 교육과정을 고등학교에도 도입하려는 제도다. 2025년에 전면시행 예정으로 고등학생도 진로와 적성에 맞는 과목을 이수해 학점을 얻으면 졸업하는 제도이며,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기도 하다.

고교학점제는 우리의 고등학교 교육이 줄 세우기, 상대평가, 결과 중심주의에서 적성과 다양성의 존중, 절대평가, 과정 중심주의의 미래형 교육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 있다. 현재 기본적 방향에 있어 충분히 타당성이 있다고 평가받기도 하지만, 예상되는 문제점들도 논의되고 있다. 제도와 관련해 눈여겨보아야 할 점들을 짚어 보자.

가장 먼저, 근본적으로 고교학점제에 관해 생각해야 할 문제는 대학의 서열화, 학벌주의 문제이다. 제도를 아무리 이리저리 바꾼들 이미 굳어진 대학의 서열화는 어떤 방식으로든 학생들을 한 줄로 세우고 경쟁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더 서열이 높은 대학을 가고 싶은 욕구가 결국 적성과 다양성의 고려보다는 서열이 높은 대학을 가는데 더 유리한 방식을 추구하게 하고, 그 결과 제도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고착화되어온 학벌주의와 대학의 서열화 문제는 학벌이 아닌 능력주의 문화의 확산, 대학의 자율성과 경쟁력 강화, 지방대학의 경쟁력 강화 등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해결이 쉽지 않으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을 예상할 수 있다.

두 번째, 고교학점제는 그것과 조화를 이루는 대학 입시제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고교학점제를 실행하더라도 대학입시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으면 고교교육이 파행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능 위주의 정시선발을 크게 늘리고,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두는 현행 입시제도의 방향은 사실 고교학점제와는 부합하지 않는다. 정부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고교학점제를 감안해 2028학년도 대입에 서술형 평가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입에 서술형 평가를 도입한다 해도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그것이 절대평가인지 상대평가인지, 단순한 자격시험인지, 대학의 자율적 평가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등의 문제가 여전히 남는다.



세 번째, 고교학점제는 자사고 외고 국제고(이하 자사고 등이라고 함)의 일괄적인 일반고 전환과 함께 2025년부터 시행된다. 만약 어떤 식으로든 자사고 등이 2025년 이후에도 일반고로 전환되지 않고 고교학점제만 홀로 시행된다면 고교학점제로 내신성적의 변별력이 약화 되어 자사고 등이 대입에 유리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문제는 자사고 등의 폐지에 대해 헌법상의 사립학교 운영의 자유와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을 근거로 헌법소원이 진행 중이며 자사고 지정취소에 대한 행정소송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자사고 등의 일반고 전환에 반대의견이 상당하고 갈등이 있으며, 특히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따라 고교학점제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네 번째, 고교학점제가 시행되기 위해서는 정부와 교육계의 긴밀한 협력체계가 구축되어야 하는데 현재 교사들은 상당수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현행 입시제도와 고교학점제의 충돌문제, 늘어나는 교사 업무, 다수 과목을 지도해야 할 필요성의 문제, 외부 전문가의 특정 과목 담당 문제 등 여러 문제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좀 더 구체적인 계획들을 밝히고 교육현장의 지지를 얻어야 할 필요성이 크다.

다섯 번째, 고등학생들이 수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는 말은 곧 더 많은 교실, 더 많은 교사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즉 정부의 재정지원이 필요하고, 상황에 따라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으며,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렇듯 고교학점제는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많아서 시행될 시 예상치 못한 시행착오를 겪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있고, 지난 세대와 같은 방식이 아닌 미래에 맞는 진화된 교육도입을 위한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며 비록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언젠가는 가야 할 길이기도 하다. 아직 시간이 있으므로 다각도의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한다./한기온 제일학원 이사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학대 마음 상처는 나았을까… 연명치료 아이 결국 무연고 장례
  2. 김정겸 충남대 총장 "구성원 협의통해 글로컬 방향 제시… 통합은 긴 호흡으로 준비"
  3. 원금보장·고수익에 현혹…대전서도 투자리딩 사기 피해 잇달아 '주의'
  4. [대전미술 아카이브] 1970년대 대전미술의 활동 '제22회 국전 대전 전시'
  5. 대통령실지역기자단, 홍철호 정무수석 ‘무례 발언’ 강력 비판
  1. 20년 새 달라진 교사들의 교직 인식… 스트레스 1위 '학생 위반행위, 학부모 항의·소란'
  2. [대전다문화] 헌혈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3. [사설] '출연연 정년 65세 연장법안' 처리돼야
  4. [대전다문화] 여러 나라의 전화 받을 때의 표현 알아보기
  5. [대전다문화] 달라서 좋아? 달라도 좋아!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시와 충남도가 행정구역 통합을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홍성현 충남도의회 의장은 21일 옛 충남도청사에서 대전시와 충남도를 통합한 '통합 지방자치단체'출범 추진을 위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했다. 대전시와 충남도는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 지방소멸 방지를 위해 충청권 행정구역 통합 추진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대를 갖고 뜻을 모아왔으며, 이번 공동 선언을 통해 통합 논의를 본격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공동 선언문을 통해 두 시·도는 통합 지방자치단체를 설치하기 위한 특별..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소상공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자영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메뉴 등을 주제로 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해 질리도록 파악하고 있어야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치와 입지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중도일보는 자영업 시작의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울 수 있도록 대전의 주요 상권..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