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4일 서산문화원 '세계로 향하는 서산 중고제 가무악 학술 세미나'에서 노재명 판소리학자(우측에서 두번째)가 방만춘 명창 탄생 200주년을 맞아 논문 '서산 중고제 가무악의 전승 보존과 국제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국악음반박물관 제공> |
판소리 명창인 송만갑, 정정렬, 김창룡, 이동백 등은 우리나라 판소리계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그야말로 판소리 대가들로 알려졌다.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정도로 전설적인 인물들이다. 우리나라 역사 속 인물로 본다면 이순신 장군 등과 같이 교과서에 실린 만한 판소리계 인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판소리는 이들처럼 유명한 판소리 대가들만 있었던 게 아니다. 지역 곳곳에서 꾸준하게 활동해 왔던 명창들도 분명, 존재했다. 한마디로 '숨은 판소리 고수(高手)'들이다.
판소리 명창 중 숨은 판소리 고수들은 판소리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고, 큰 획을 그었던 인물들도 많다. '충북 진천 출신' 판소리 김봉학 명창이나 방만춘, 김성옥, 이석순, 김제철, 황해천 명창 등이 '숨은 명창'에 속한다. 이들 말고도 여러 숨은 명창들이 곳곳에서 활동해 왔다. 이 명창들 중에는 진양조 장단을 판소리에 처음으로 도입한 이(김성옥)도 있고, 여러 고전을 '판소리화' 하는 등 판소리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인물이다. 물론 판소리 역사도 새로 써내려갔다. '숨은 고수', 그러니까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충청도 명창들은 누구였고, 또 어떤 특징을 갖고 있었는지 조사해 봤는데, 그들의 업적은 대단했다.
노재명 판소리학자가 2017년에 조선시대 전기 8명창 방만춘의 적벽가 중 '적벽화전' 장면을 형상화 한 설치미술 작품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
먼저 방만춘 명창이다. 방만춘은 정노식의 조선창극사에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방만춘은 1820년 충남 해미읍에서 출생했다. 11세에 해미 일락사에 가서 소리 공부를 시작해 10여년간 독공을 했다. 방만춘의 독공과 관련한 일화는 유명하다. 조선창극사는 그의 독공과 관련한 일화를 남겼데, 그에 대한 기록은 이렇다. 그가 독공을 할 때, 때마침 절(사찰) 목공이 산에서 방만춘 소리를 듣게 된다. 목공은 절이 무너지는 듯한 굉장한 소리를 들었다. 깜짝 놀란 목공은 산에서 내려왔는데, 여러 사승들은 없고, 방만춘 홀로 넋을 잃고 앉았을 뿐이다.
방만춘이 목을 틔우기 위해 기둥을 안고 소리를 질렀는데, 목이 툭 터지는 과정(득음)에서 절 목공이 그의 큰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이때 방만춘은 득음 과정에서 정신을 잃었다고 한다. 그래서 방만춘은 웅장한 성량과 고음을 얻게 됐다. 이후 방만춘은 적벽가와 심청가를 고전에서 윤색 개작했다고 한다. 삼국지와 심청전 고전 사설을 '판소리화' 시켰다는 것이다.
노재명 국악학자는 "방만춘의 이러한 노력들, 그리고 입을 최대한 크게 벌리고 목청을 좌우로 젖혀가며 힘차게 아주 높은 고음으로 내지르는 그의 '아귀상성 살세성' 창법은 매우 중요한 업적"이라며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는 판소리 다섯 바탕 중, 적벽가와 심청가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방만춘은 얼마나 대단한 판소리 명창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제천=손도언 기자 k-55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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