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광장] 음주측정불응죄

  • 오피니언
  • 목요광장

[목요광장] 음주측정불응죄

대전경찰청 유동하 112상황실장

  • 승인 2021-05-19 09:31
  • 이현제 기자이현제 기자
유동하
유동하 실장
스피아민트. 아침에 출근하면 가장 먼저 손이 가는 꽃이다. 잎 부위를 손으로 쓰다듬고 코로 맡으면 시원하고 상쾌한 향이 난다. 며칠 전 꽃을 전지하고 자른 부분을 종이컵 물에 띄웠더니 끝 부분에서 뿌리가 나왔다. 참으로 생명력이 강한 신통방통한 꽃이다. 꽃말은 '현명', '지혜', '따뜻한 마음'이라고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고의든 과실이든 사고를 낼 수 있다. 그 때에 중요한 것은 지혜롭게 사건을 마무리 짓는 것이다. 지혜롭지 못하면 경제적·시간적으로 또는 형사적으로 더 큰 피해를 당하기도 한다.

운전 중에 음주단속에 걸린 상황이라면 어찌해야 좋을까? 옛날에는 인맥을 과시하며 단속을 회피하려 했다면, 최근에는 단속의 절차적 흠결을 이유로 단속을 회피하려는 경향이다. 오늘은 한 사례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2016년 5월 초 2시경 어느 지역에서 있었던 일이다.



A 씨는 운전 중 유턴차량(B)과 사고가 날 뻔했다. A 씨는 뒤쫓아가면서 음주 의심 차량이라고 112에 신고했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관은 B 씨에 대해 음주감지기 시험을 했으나 감지되지 않았다. 당시 순찰차에는 '음주감지기'는 있었으나 '음주측정기'는 없었다. 이후 B 씨는 A 씨가 음주운전을 한 것 같다며 음주측정을 요구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음주가 감지됐다. 경찰관이 음주운전 여부를 추궁하자 A 씨는 '운전하지 않았다. 직접 경찰서에 가서 밝히겠다'고 하면서 스스로 현장에 있던 순찰차에 탑승했다. 지구대로 가던 중 A 씨는 '집에 가겠다. 순찰차에서 내리게 해달라'고 요구했고, 이에 경찰관은 A를 일단 하차시켰다. 경찰관은 지구대에 연락해 음주측정기를 가지고 오도록 하는 한편 집으로 가려는 A 씨를 이탈하지 못하도록 제지했는데 그 시간은 5분 정도 계속됐다. 경찰관은 A 씨가 측정요구에 불응하자 현행범으로 체포했고 검사는 음주측정거부죄로 공소를 제기했다.

1심은 경찰관의 5분간 귀가하지 못하게 한 제지행위를 불법체포로 규정하면서 위법한 체포상태에서 행한 음주측정 요구는 위법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제2심도 1심과 같은 입장이었다. A 씨는 그때까지 음주운전과 음주측정거부죄의 완전범죄를 꿈꾸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대법원은 사안을 달리 봤다. 대법원은 하차 후 집에 가려는 의사표시를 한 때에 음주측정거부죄가 성립한다면서 파기환송했다(2017도12949). 5분간 제지와 체포행위는 범죄가 성립된 이후 하나의 사정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 후 2020년 7월에 파기환송심은 음주측정불응죄에 대해 벌금 500만 원을 선고하고 확정됐다.

A 씨는 4년여 간 법정투쟁을 하면서 다액의 변호사 비용과 벌금 500만 원, 그리고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을 것이다. A 씨가 무엇을 믿고 재판을 진행했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추측해 본다면 임의동행이나 현행범체포의 '적법성'과 관련된 사례를 많이 공부하지 않았을까? 위 사건은 '자진 출석' 중인 피의자가 귀가를 요청한 사건이나 형식상 '임의동행'과 유사하다.

즉 임의동행은 임의성이 입증되지 않으면 그 이후 절차형성행위는 위법하게 된다. 따라서 A 씨의 하차요구 시 경찰관이 하차시켜준 행위는 아주 잘한 법 집행이었다. 만약 하차 요구에도 그대로 진행했다면 임의동행의 적법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무죄로 판결 났을 것이다.

이 무렵 유사한 사건에서 '경찰서로 가던 중 하차를 요구했으나 경찰관의 수사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빨리 가자고 한 사건'에서 대법원은 임의동행을 적법하다고 했다(2015도2798).

음주운전은 하면 안 된다. 만약 단속에 걸리면 음주측정에 응하는 것이 현명하고 지혜로운 판단임을 위 사례를 통해 분명히 인식하기를 기대해 본다. 현장경찰관도 음주감지기와 음주측정기를 한 세트로 가지고 다니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법원은 '경찰관서에서 음주 측정할 목적으로 현행범체포는 위법하다'는 판례(2016도19907등)를 축적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대전경찰청 112상황실 유동하 실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고교 당일 급식파업에 학생 단축수업 '파장'
  2. 대전 오월드서 에어컨 실외기 설치 작업자 추락해 사망
  3. 열악했던 대전 여성노숙인 쉼터…지원 손길로 '확 달라졌다'
  4. "뿌리부터 첨단산업까지… 지역과 함께 혁신·성장하는 대학"
  5. 대전 중구 교육부 평생학습도시 신규 선정 '중구가 대학, 온마을이 캠퍼스'
  1. 대전교사들 "학교 CCTV 의무화, 사건 예방에 도움 안돼" 의무화 입법에 반발
  2. 계룡산성 道지정문화재 등록 5년째 '보류'…성벽과 기와 무너지고 흩어져
  3. 대전 금고동 주민들 "매립장·하수처리 공사장 먼지에 농사 망칠판" 호소
  4. 사랑의 재활용 나눔장터 ‘북적북적’
  5.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헤드라인 뉴스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탄핵정국 속 두 쪽으로 갈라진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고 민주주의가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4·2 재보궐선거 본 투표 당일인 2일 시의원을 뽑는 대전 유성구 주민에게선 사뭇 비장함이 느껴졌다. '민주주의의 꽃' 선거를 통해 주권재민(主權在民) 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발현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저마다 투표소로 향한 것이다. 오전 10시에 방문한 유성구제2선거구의 온천2동 제6투표소 대전어은중학교는 다소 한산한 풍경이었다. 투표 시작 후 4시간이 흘렀지만 누적 투표수는 고작 200표 남짓에 불과했다. 낮은 투표율을 짐..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국내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이 약 9500여 만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40대 차주의 평균 대출 잔액은 1억 1073만 원으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이 한국은행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은 9553만 원으로 조사됐다. 이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지난 2012년 이후 역대 최고 수준이다. 1인당 대출 잔액은 지난 2023년 2분기 말(9332만 원) 이후 6분기 연속 증가했다. 1년 전인 2..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숨겨진 명곡이 재조명 받는다. 1990년대 옷 스타일도 다시금 유행이 돌아오기도 한다. 이를 이른바 '역주행'이라 한다. 단순히 음악과 옷에 국한되지 않는다. 상권은 침체된 분위기를 되살려 재차 살아난다. 신규 분양이 되며 세대 수 상승에 인구가 늘기도 하고, 옛 정취와 향수가 소비자를 끌어모으기도 한다. 원도심과 신도시 경계를 가리지 않는다. 다시금 상권이 살아나는 기미를 보이는 역주행 상권이 지역에서 다시금 뜨고 있다. 여러 업종이 새롭게 생기고, 뒤섞여 소비자를 불러 모으며 재차 발전한다. 이미 유명한 상권은 자영업자에게 비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 한산한 투표소 한산한 투표소

  •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