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현의 재미있는 고사성어] 제71강 소규조수(蕭規曹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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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현의 재미있는 고사성어] 제71강 소규조수(蕭規曹隨)

장상현/ 인문학 교수

  • 승인 2021-05-18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제71강 소규조수(蕭規曹隨) : 소하(蕭何)는 법을 만들고 조참(曹參)은 법을 따랐다.

글자 : 蕭(맑은대쑥 소), 規(법 규), 曹(마을 조), 隨(따를 수)로 구성된 성어이다.

출처 : 사기(史記), 조상국세가(曹相國世家)에 보인다.

비유 : 전임자로부터 쓰던 법과 제도를 후임자가 그대로 따르므로 국정에도 무리가 없고 백성들도 편안함을 비유한다.





법(法)은 단순하면서 알기 쉽고 지키기에 무리가 없이 만들어져야 한다.

어느 정부이든 법을 발의하고 심의를 거쳐 제정. 공포할 때 그 나름대로 국민의 편의와 국익 등을 심층 고려하여 정의로움에 신중함을 취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법은 지속이 보장되고 지켜져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법이란 자기 정권에 맞지 않는다고 함부로 폐기하거나 변경하면 오히려 부작용이나 후폭풍의 대가를 감당해야 한다.

중국을 통일한 진(秦)나라는 40년이 못 되어 멸망하고 만다. 그 후(後), 한고조(漢高祖/劉邦,유방)가 한(漢)나라를 창업하여 소하(蕭何)를 승상(丞相)으로 삼아 바른 정치를 하였고, 소하가 죽음에 그의 천거에 따라 조참(曹參)이 승상의 자리를 계승했다.

본래 소하와 조참은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의 고향인 패현(沛縣)의 하급 관리 출신으로, 유방이 거병(擧兵)하자 유방을 따라나섰다. 아주 친했던 두 사람은 초. 한(楚. 漢) 전쟁승리 후의 논공행상(論功行賞) 때문에 사이가 벌어졌다. 이유는 한 번도 전장에서 말을 달린 일 없이 그저 붓과 입만 놀린 소하(蕭何)가 일등공신이 되어 승상(丞相)으로 임명된 반면, 수많은 부상을 입으며 혁혁한 무공을 세운 조참(曹參)은 산동(山東)에 위치한 제후국(諸侯國)의 상국(相國)으로 임명되어 황제의 곁에서 멀어졌다.

한고조(漢高祖)가 죽고 아들 혜제(惠帝)가 그 뒤를 이은 2년 후, 소하도 사망했다. 이 소식을 들은 조참은 상경(上京)을 서두르면서 "내가 곧 승상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얼마 후, 과연 황제의 사자가 도착했다. 황제와 조참 두 사람은 천하가 다 알 만큼 사이가 나빴지만, 조참은 소하가 죽으면서 자신을 후임으로 천거할 것을 미리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하의 천거로 승상에 오른 조참은 오로지 전임 승상이 만든 법을 충실히 따를 뿐 무엇 하나 고치는 일이 없었다. 다만, 언행이 질박하고 꾸밈없는 사람을 발탁하고, 눈에 보이는 실적과 명성만 탐하는 관리들을 내칠 따름이었다. 그 나머지는 밤낮으로 술만 마셨다. 경대부와 관리들, 그리고 빈객들이 간언을 하기 위해 오면 좋은 술을 대접했으며, 말을 하려고 하면 다시 술을 권해 대취하게 만들어서 그냥 돌아가게 했다. 승상이 이렇게 정무를 돌보지 않자, 혜제(惠帝)는 마침내 승상을 불러 면전에서 힐문했다.

그러자 조참이 말했다. "폐하와 선제(先帝/한고조) 중에 누가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십니까?" 혜제가 "짐이 어찌 선제를 넘보겠소"라고 하니, 다시 조참이 "그러면 저와 소하 중 누가 더 낫습니까?" 혜제가 "그대가 소하에게 미치지 못하는 것 같소." 그러자 조참이 말했다. "폐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선제와 소하는 천하를 평정하고 법령과 제도를 제정했습니다. 그러므로 폐하는 가만히 계시면 되고, 신(臣) 등은 직책을 잘 지켜 따르기만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혜제가 말했다. "그대 말이 옳소."

소하가 정해 놓은 법령을 조참이 운용만 하던 상황에 대해 전한(前漢) 말기의 학자 양웅(楊雄)은 '양자법언(揚子法言) 연건(淵騫)'에서 '소하는 법규를 만들고, 조참은 따랐다.(蕭也規, 曹也隨/소야규, 조야수.)'라고 기록했는데, 여기에서 '소규조수(蕭規曹隨)'라는 말이 나왔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전 정권의 정책과 법령을 부정하지 않고 '소규조수(蕭規曹隨)'해서 사업을 마무리할 수 있는 풍토가 아쉽다.

중앙이든 지방이든 정권만 바뀌면 새로운 사업을 벌이고, 전 정권의 법은 무조건 잘못된 것으로 치부하여 고치고 없애는데 혈안이 되고 있다. 그런데 그 예산이 누구에게서 나오는가? 그 고통과 무거운 짐은 그들이 아니고 바로 선량한 국민들의 몫이다.

'조령모개(朝令暮改)'란 말이 있다. 곧 아침에 명령을 내리고 저녁에 그 명령을 바꾼다는 뜻이다. 우리의 속된 표현으로 '변덕이 죽 끓듯 한다'고 하는 말과 다름이 없다. 이렇다면 견디어 낼 국민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 정부 들어 무수한 법령이 개정되고 바뀌었다. 심지어 사건 하나만 있어도 법을 개정한다. (김영란법, 민식이법 김용균법, 공수처법 등……)

법을 제정하는 국회의원조차도 정신 못 차릴 정도라 한다. 장관임명은 대통령 맘대로 하니 청문회 법의 필요성이 의심된다. 법은 제정도 중요하지만 지킴도 중요하다.

이 정부는 여당의 의석 수가 많아지니 그야말로 멋대로이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악법(惡法)은 제정한 자들이 먼저 적용받는다는 것이다. 아마 공수처 법의 우선적용은 이 법을 억지로 밀어붙인 자들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고, 검찰의 권한을 경찰로 돌려 임시변통하려는 무리들은 머지않아 경찰의 예리한 칼날이 그들에게 먼저 가해질 것이다.

한비자(韓非子)의 해노편(解老篇)의 교훈을 주목한다.

"작은 생선을 찌는데 자주 뒤집으면 윤기를 잃게 되고, 큰 나라를 다스리면서 자주 법을 바꾸면 백성들이 고통스럽다(烹蘇鮮而數撓之則賊其澤 治大國而數變法則民苦之/팽소선이삭요지즉적기택 치대국이삭변법즉민고지)"

자기 입맛에 맞게 자주 바꾸는 법, 그 후유증의 책임은 법을 바꾼 자들의 몫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 고통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인데 눈감고, 귀 닫고 있는 위정자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아무래도 이해하기 힘들다.

장상현/ 인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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