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도, 작자 미상, 1825년경, 지본담채, 114.2 × 56.5 ㎝, 도쿄국립박물관 |
당시 유행했던 가체(加?)를 하고 있다. 다른 그림보다 얹은머리가 작아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하다. 저고리가 짧고 품이 작아 가슴이 살짝 드러난다. 저고리 소매 폭도 매우 작다. 왼팔로 풍성한 치마폭을 감싸 올리고 있으며, 손에는 꽃을 들고 있다. 균형 잡힌 고운 얼굴과 신체, 볼륨감과 살아있는 동세, 돋보이는 적절한 채색이 최상의 어울림을 자아낸다. 또 하나 특징이 있다면 이 그림은 시의도라는 것이다. 어무적(魚無迹, 생몰 미상, 16세기 초 활동)의 시 「미인수(美人睡)」가 화제이다.
"잠에서 깨어나니 겹문에 찬 기운 감돌고 / 구름처럼 두른 가체에 누인 홑적삼만 걸쳤네 / 그저 봄이 저물면 어쩌나 싶어 / 매화 꺾어 들고 홀로 바라보네 / 睡起重門??寒 ?雲?繞練袍單 閑情只恐春將晩 折得梅花獨自看"
꽃이 피면 머지않아 봄이 떠날 것을 안다. 그렇다고 가는 봄을 막을 수도 없는 일이다.
어무적은 사대부와 관비(官婢) 사이에서 태어난 서얼(庶蘖) 출신이다. 사직(司直, 정5품)을 지낸 아버지 어효량(魚孝良)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한문을 익힐 수 있었다. 당시 법에 따라 관노가 되었다가 면천되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문학적 재능은 높이 평가받아, 『속동문선(續東文選)』과 『국조시산(國朝詩刪)』에 그의 시가 전한다.
조선왕조실록에 그가 쓴 '율려습독관(律呂習讀官)'이란 상소문이 전한다. 연산군일기 40권, 연산 7년 7월 28일 을해 1번째 기사이다. "어무적이 나라의 근본을 회복하는 등의 제안을 상소하였으나 회보하지 않다."로 시작한다.
자신은 물론이고 백성의 어려운 사정을 간과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새는 지붕은 위에 있지만, 새는 줄 아는 것은 밑에 있다.(屋漏在上知之者在下)'고 하며, 누구보다 바닥 사정을 잘 아니, 백성의 질고를 아뢸 기회를 달라 청한다. 먼저 큰 근본을 바로잡으라 한다. 마음을 바르게 하고 뜻을 성실하게 하여야 한다. 교만한 마음은 정치를 해롭게 하고 사치스러운 마음은 재물을 해롭게 한다고 지적한다.
둘째로 선비들의 기개를 기르라 한다. 사람의 도리를 지키는 절의가 없으면 쓸 수 없다 한다. 기개를 진작시키려면 언로를 틔워서 어진 이를 끌어 올리고 부정한 사람은 물리치라 한다. 이 외에도 주색을 삼가며, 배불(排佛)을 주장하거나 무리한 성 쌓기를 멈추라 청한다.
모든 작품을 언급할 수야 없는 일이다. 몇 작품만 간결한 감상을 적어보자. 대표작 「유민탄(流民嘆)」은 연산군의 학정으로 늘어난 유랑민의 어려운 처지와 그를 해결할 의지조차 없는 관을 보며 탄식하는 시이다. 「신력탄(新曆歎)」 역시 현세를 원망하며 태평성대와 이상세계를 소망하고 제시한다.
「작매부(斫梅賦)」는 필화사건이 얽힌 시이다. 백성을 갈취하던 신임 현감이 매화나무에까지 세금을 부과하자, 세금 낼 돈이 없던 한 백성이 매화나무를 도끼로 찍어 잘라낸다. 매화나무는 완상용이거나 정신수양의 대상으로 울안에 키우는 관상수였다. 자르는 현장을 목격하고, 사정을 들은 어무적은 분노가 치솟는다. 글로 관리의 횡포를 규탄하니 그것이 시「작매부」다. 세간에 널리 퍼지자 탐관오리들이 그를 잡아 벌주려 한다. 그만 도망자가 되어 동가식서가숙하다 어느 역사(驛舍)에서 죽었다 전한다.
무지렁이도 이상세계를 꿈꾸고 나라 전체와 장래를 걱정한다.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고 권력을 위한 정치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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