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선희 대전예술의전당 관장 |
-임기 한 달째를 맞았다. 소감은.
▲지난 한 달은 새로운 영토를 탐험하는 시간이었다. 대전예술의전당 2021년 공연계획과 운영 방향을 파악하고 학습하면서 함께 일할 직원들과 호흡을 맞추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대전예당에서 선보인 굵직한 작품 리스트 점검하면서 새로움을 더할 지점을 찾는 시간이었다. 대전예당은 물리적 공간으로써 2003년 개관 이후 최근까지 내 삶의 상당 부분을 보낸 장소다. 일터이면서 꿈을 실현해 온 장소이기도 했다. 일하면서 얻은 기쁨과 환희, 좌절과 고민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낯섦이 덜 하다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지역 출신으로 대전예당과의 시너지를 기대하는 목소리와 함께 예술단 업무만 주로 한 이력 때문에 우려의 소리도 나온다.
▲ 기대도 우려도 대전예술과 예당의 발전을 위한 격려와 응원이라 생각한다. 개관 이후 대전예당의 초석을 놓고 성장시켜온 모든 분의 업적을 디딤돌 삼아 다가오는 20주년에는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도록 단단히 준비하겠다. 20년 넘게 해온 예술단 업무는 넓은 관점에서 공연예술 전반이었다. 지역 예술인들과 작품으로 협업을 이어가는 한편, 관객의 입장으로 만나기도 했다. 대전예당이 대전지역 공연예술 생태계의 중심이자 시민들에게는 삶의 활력을 주는 향유 공간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수준 높은 작품을 선보여 관객의 만족도를 높이고, 지역 예술가와의 깊은 소통으로 지역예술 생태계가 진화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힘을 쏟겠다.
-취임 후 가장 강조한 것은 무엇인가.
▲ '소통'과 '협력'이다. 내부 조직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에 이어 관객과의 소통, 대전예당의 가장 큰 후원자인 대전시민과 더 가까워질 방법을 찾아보자고 한다. 조직의 운영은 늘 변화하고 새로워져야 하며, 혁신은 소통을 통한 협력에서 탄생한다. 키스소여는 저서 '그룹 지니어스'에서 그룹에 속한 사람들이 협력해 통찰력을 끌어낼 때 창의성이 극대화되고, 혁신이 가능하다고 정의했다. 대전예당은 기획부터 무대예술까지 전문가 집단이 상주하는 조직이다. 이들의 불꽃 튀는 에너지가 모여 이뤄낼 새로움으로 활력을 불어넣고 변화를 견인할 것이다. 또 다른 관점으로 '발견'과 '전환'이다. 예술과 관객의 삶 속에 깃든 욕망과 욕구를 발견하고, 이를 발현하도록 도와 새로운 변화를 이뤄내려 한다. 감염병 사태로 인류는 거대 전환기를 맞았고, 공연예술계 역시 사고의 전환이 절실할 때다. 트랜드보다 앞선 공연장 역할을 고민하고, 지역의 브랜드 형성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기획을 펼쳐 나가겠다.
▲ 대전예당은 개관 이후 18년 동안 도시의 품격을 드러내고 정체성 형성에 일조해왔다. 아쉬운 건, 그러한 노력에도 전당만의 브랜드 이미지 구축이 미비했다는 점이다. 애초 다목적홀로 건립한 대전예당은 그에 따른 취약점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LG아트센터도 다목적홀이지만 혁신적 공연예술 흐름을 담아내는 공연장으로 고유 이미지를 정착시킨 좋은 사례로 꼽힌다. 다목적 공연장의 한계를 얘기하다 보면 생산과 향유가 가장 활발한 음악공연을 좀 더 전문화할 수 있는 '콘서트 전용홀' 마련으로 귀결된다. 대전예당 공연 중 클래식음악 무대 비중이 가장 크다는 점을 고려해 '제2예당'을 음악전용홀로 만들 필요가 있다. 제2예당 건립 관련 과거 몇 차례의 언급에 진척을 보이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가시화되는 분위기다. 대전시민들의 문화향유를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건립 움직임이 시작되길 바란다.
-대전예당의 강점을 말해달라. 타 지역 예당과 비교해 대전예당만의 경쟁력이 있다면.
▲ 대전예당은 개관 초기부터 화제의 중심에 섰는데 '기획전문 공연장' 타이틀 덕이었다. 공연장 건립비의 10% 운영비 투입을 실행에 옮겼고, 18년 동안 유지해오고 있다. 대전시의 선진적인 예술 행정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기획과 무대예술 등 35명의 전문인력 구성도 강점이다. 지리적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세종시와 인접한 것도 기회 요인으로 본다. 세종아트센터와의 다양한 협업을 이어가며, 충청권까지 관계망을 넓혀 가을 시즌을 겨냥한 큰 그림으로 이어가겠다.
-그동안 대전예당의 문턱이 높다는 지적이 많았다. 지역 예술가들과의 관계 설정은.
▲ 대전예당은 2004년부터 매년 스프링페스티벌을 기획해 지역 예술가들과 단체와의 협업을 이어오고 있다. 공모나 제작 등 선정방식은 조금씩 달리 해왔지만, 지역 예술가들과의 협업이라는 근본 방향은 변함이 없다. 올해 스프링페스티벌을 초청공연으로 구성하면서 잡음이 있었는데, 지역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한 방식이었다. 건강하고 자속 가능한 지역 예술 생태계 구축은 대전예당 존립의 밑천이기도 하다. 다만, 문턱이 높다는 지적이 공간사용을 위한 대관에 따른 문제라면 수시대관 빈도를 높이면서까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걸 알아주길 바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공연계가 침체했다. 올해도 비슷한 상황으로 이어지는데, 앞으로 이에 대한 복안은.
▲코로나 사태 이후 세계 공연예술계는 지역화와 유연성, 온라인 3가지 키워드를 기반으로 움직였다. 이동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지역예술가들 중심 공연으로 대응하면서 이들이 가치가 재조명되는 한편, 온라인 플랫폼으로 관객과 소통하며 활로를 찾기 위해 노력해왔다. 대전예당도 지역 기반 기획사와 예술가, 단체와 상생의 길을 찾으며 무대를 지켰다. 올해도 지난해와 비슷한 상황에서 상반기 국내 최고의 아티스트, 지역 예술단체와의 연계로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지역예술계의 지원을 돕는 대전문화재단과의 협력 방안도 구체적으로 논의할 계획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공연예술계의 창작 환경에 맞춰 '온라인 특화공연'을 시도하고 있다. 감염병으로 빠르게 확산한 온라인 채널은 코로나 사태 종식 이후에도 MZ세대 성향 반영 등 지속적인 운영이 필요할 것이다.
-대전이 '문화불모지'라는 지적이 많다. 관장님이 그리는 문화도시 대전은.
▲대전예당이 생긴 이후 '문화불모지' 수식어가 사그라들었다는데 많은 이들이 동의한다. 모리스 베자르 발레단 단독초청 공연을 비롯해 대전예당 개관 이후 대전의 문화적 자부심을 높이는 공연이 적지 않았다. 지역예술가들의 도전과 창조의 무대, 시립예술단의 성장은 대전 문화예술 지형도를 바꿔놓았다. 문화도시는 창작 분야만 활성화한다고 이뤄지지 않는다. 창작과 향유가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 공연예술 속성이다. 이제부터 중요한 일은 관객을 개발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한 도시에서 공연의 잠재관객을 인구의 12~15%로 본다. 대전에 빗대어 보면 20~30만 명의 잠재관객을 설정할 수 있다. 이들을 어떻게 '참여관객화' 할 것인가가 과제로 남는다. 예술은 개인에게 즐거움과 공감 능력을 높이고, 사회적으로는 연대형성과 공동체 회복에 영향을 미친다는 보고가 있다. 문화도시 대전은 콘서트전용홀 같은 공연예술 인프라 확충과 지역 예술 활성화로 예술을 사랑하는 참여 관객 증가 등 3박자가 조화를 이룰 때 가능하다고 본다.
-임기 내 대전예당 20주년을 맞이한다. 새로운 도약을 위한 청사진,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해달라.
▲대전예술의전당은 그동안 대전시민의 삶의 품격을 높이고 행복을 선사해왔다. 개관 20주년을 앞두고 즐거운 상상과 감동으로 빛나는 모두의 예술공간, 21세기 중심 공연장을 꿈꾼다. 우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말한다. 4차 산업혁명의 기본은 창조성이고, 창조력은 무한 상상이 뒷받침될 때 가능하다. 대전예당이 그 중심에 있고자 한다. 공연장에 오지 않는 시민들까지 랜드마크적 요소를 지닌 공연장으로서의 의미를 두게 하고 싶다. 이를 위해 생동감 넘치는 조직으로 거듭나고 열정과 창의를 모아 이 시대 화제작, 최고의 작품을 기획하고 선보일 것이다. 감염병으로 인한 팬데믹 시대가 도래하면서 공연장도 달라져야 한다. '마음을 읽는 서비스'로 관객과 소통하고자 한다. 코로나19로 비대면이 일상화하고, 기술과 연결한 삶은 오히려 인간의 마음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공연장이 창작과 유통의 매개체로 예술가와 관객의 마음을 헤아리도록 노력하겠다. 생애주기별, 체험형 교육프로그램 활성화도 운영 방향에 포함돼 있다. 개관 30주년을 위한 중장기 목표로 대전 공연예술 지형을 형성해갈 대표 기획물도 구상하고 있다.
-임기 내 시민들에게 선보이고 싶은 기획공연은.
▲ 2023년 개관 20주년 프로그램까지 연장될 수 있는 기획을 논의하고 있다. 고정관념을 깬 기획으로 흥미로운 결과물을 보여주도록 노력하겠다. 대전은 과학수도를 꿈꾼다. 공연예술은 최근 발전하는 과학기술과 결합한 생생한 무대를 선보이며 발전해가고 있다. 개관 20주년에는 대전이 축적한 과학기술과 접목한 무대로 시대적 흐름을 선도하는 공연예술을 선보일 수 있도록 계획하겠다.
-기자 출신으로 기관의 수장이 됐다. 전임 관장과는 이력이 남다른데,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 조직원들이 행복하게 일했으면 좋겠다. 내가 진행한 공연이 성취감으로 이어지면서 존재 이유이자 삶의 의미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 내부 구성원들을 잘 섬겨야 기쁘게 일 한 결과가 시민들에게 전달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공연예술 분야를 좋아했고 매력을 느꼈다. 과거 문화부 기자 때도 즐겁게 일했고, 예술단 업무로 이어졌다. 이 경험들이 든든한 이력으로 승화돼 대전예당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할 것이다. 90명의 내부 인력들과의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홍선희 프로필>
1962년 출생. 충남대학교 국문과 졸업. 동 대학원 글로벌문화콘텐츠 석사. 할머니의 서도소리 배뱅이굿과 어머니는 슈베르트 애호, 가수 이미자의 팬이었던 아버지의 문화적 취향 사이에서 다양한 장르의 문화를 편견 없이 수용하는 감수성을 지니고 자랐다. 연극무대의 생생한 호흡과 음악연주회가 주는 특별한 감동에 매료돼 20대를 보냈다. 1988년 올림픽이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던 그해, 복간된 중도일보사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문화부 기자로 일하며 대전의 문화적 지형도를 몸으로 체득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 1999년 대전시립무용단 사무국장으로 공연예술계 일을 시작했다. 대전시립무용단과 '한 여름밤 댄스페스티벌' 어린이를 위한 공연 '춤으로 그리는 동화'를 기획해 무용단의 대표 콘텐츠로 키웠다. 대전시립합창단과는 국내합창단으로는 드물게 소니레이블로 'Handel_Dixit Dominus', 'Frank Martin_Mass for Double Choir' 음반을 발매했고 'Bangkok's International Festival of Dance &Music', '통영국제음악제' 등에 초청공연을 추진, 합창단의 지평을 넓혔다. 대전시립교향악단에서 DPO콰르텟을 선보였고, 이후 대전시립청소년합창단 사무국장까지 두루 거치며 대전시립예술단 성장에 이바지했다.
대담=오희룡 디지털룸 1팀장·정리=한세화·사진=이성희 기자
※인터뷰는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준수하며 진행했습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