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주리틀고' 법이나 형벌보다 건전한 문화가 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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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주리틀고' 법이나 형벌보다 건전한 문화가 최선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21-04-30 18:29
  • 수정 2021-04-30 18:31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층간 소음문제로 다툼이 심각해 중재해야 한다며 도움 요청 연락이 왔다. 스스로 합의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주장만 있고 이해나 관용이 없기 때문이리라. 두어 달 전에도 화두에 올라 생각해 보았던 사안이다. 건전한 문화, 상호존중과 겸손한 자세로 문제를 바라볼 때 해결이 가능하다.

분쟁이 생기면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우리는 서로 겨룰 때는 물론 농담으로도 '법대로 하자'는 말을 곧잘 한다. 스스로 해결하기보다 법원이나 타의 판단에 의존한다. 가장 합리적이란 생각이리라. 그렇다고 법을 잘 아는 것도 아니다. 막상 일이 불거지면 속수무책이다. 재판에서 몰랐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법이나 소송 절차를 스스로 터득하기에 절치부심하는 모습도 종종 보인다. 단기간에 터득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잘못하면 더 크게 낭패 보기 십상이다. 전문가가 필요한 대목이다.

사법연감에 의하면 우리나라 연간 소송 건수가 700여만 건에 이른다. 사건 총수는 이보다 훨씬 많다. 상대적으로도 높은 모양이다. 우리보다 인구수가 2배 이상 많은 일본에 견주어, 6배가 넘는다는 주장도 있다. 원래 분쟁, 송사를 즐기기라도 하는 것일까? 너도나도 송사에 열을 올린다.

보다 근원적으로 볼 때 이러한 현상이 바람직한가 것일까? 유가에서는 무송사회(無訟社會)가 이상이었다. 논어 안연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공자가 말하기를, 재판하는 것은 나도 남들처럼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기필코 소송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子曰 聽訟 吾猶人也 必也 使無訟乎)". 조선 위정자들은 소송 때문에 윤리가 사라지고 풍속이 무너져 고려가 망했다고 생각했다. 유교를 숭상했지만, 조선 사회도 다르지 않았다. 송사가 많아, 누구나 법전이 필요했다. 일반인도 쉽게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는 법전이 다수 출판되기도 한다. 그런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었다. 소송이 차고 넘쳐 조정조차 탄식한다. '실용서로 읽는 조선'(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의하면 "백성이 소송을 좋아하는 것은 풍속이다"라며, 무송사회를 포기하기에 이른다. '동방예의지국'이 아니라 '동방소송지국(東方訴訟之國)'이란 자조 섞인 말도 한다.



사람이 생면부지의 세상에 가면 알고자 하는 것이 많다. 그중 하나가 풍속이다. 개화기에 조선에 온 이방인도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해하고 알리고 싶었으리라. 이들이 수집해 간 풍물 중에 풍속화가 많다. 대표적인 작가가 김준근(金俊根, 생몰미상)이다.

1500여 점의 작품이 전한다. 작가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수집해 간 사람들의 기록으로 유추해보는 것이 전부다. 원산, 부산, 인천 등 개항장에서 주로 활동했다. 개항장은 자유무역항에 해당한다. 외국인과 외국 선박이 자유로이 왕래하고 교류하는 항구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주최하여 지난해 5월부터 올 3월까지 열린 '기산 풍속화에서 민속을 찾다'를 비롯 몇 차례 전시회가 있어 소개된 바 있다. 우리 민속을 망라해서 그린 것 같이 소재와 주제가 다양하다. 물론 개인의 견문은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외국인 요구에 부응하여 그리다 보니 누락 된 것도 많다.

천연 채색 사용으로 1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채색이 그대로 살아있다. 풍속이 얼마나 정확히 담겼는지 알 수 없지만, 나름대로 당시 시대상을 전해준다. 개화기 우리 삶의 변화가 그림으로 서술된 역사이다. 더불어 예술, 학술 가치도 높다. 외국인 및 외국 기관이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인기 작가이기도 하다.

주리틀고
풍속화뿐만 아니라 김준근은 최초의 번역 출간된 서양 문학작품 '천로역정(텬로력뎡, Pilgrim's Progress, 天路歷程, 1895)'의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영국 작가 존 버니언(John Bunyan, 1628 ~ 1688)이 쓴 우화소설로 캐나다 온타리오 출신 선교사인 제임스 S 게일(James S. Gale, 한국명 奇一, 1863∼1937)이 번역했다. 외에도 다수의 외국인 저서에 삽화를 그렸다고 전한다.

그림은 '쥴이틀고(주리틀고)'로 형벌을 가하는 그림이다. 형벌도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인 모양이다. 죄인의 손발을 땅바닥에 묶어 놓았다. 다각도에서 그린 그림이 있어 알 수 있다. 뒤에 선 형리는 작대기를 붙들고 있다. 작대기에 죄인 양손이 묶인 팔을 묶어 놓았다. 영화나 극에서는 허벅지에 작대기 끼워 압박한다. 다리 아래위를 묶고, 그사이에 작대기 끼워 정강이에 압박을 가한다. 의자에 앉혔을 때도 마찬가지다. 허벅지보다 정강이가 더 고통스러울 것 같다. 한 세대쯤 뒤에 활동한 김윤보(金允輔, 1865 ~ 1938, 도화서 화원) 그림도 다르지 않다. 김윤보는 추국, 문초, 처형, 면회 등 48 법집행장면이 담긴 '형정도첩(刑政圖帖)' 풍속화첩을 남겼다.

법이 많다고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악용하는 사람 또한 많아지기 때문이다. 모두 법으로 규제할 수도 없다. 피해 다닌다. 아는 만큼 사회악이 되기도 한다. 형벌이 강해도 범죄는 사라지지 않는다. "형벌로 백성을 바르게 한다는 것은 최하의 수단이다. 자신을 단속하고 법을 받들어서 장엄하게 임한다면 백성이 법을 범하지 않을 것이다."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말에 동의한다. 법은 줄이고 형벌은 완화, 교화에 힘써야 한다. 모범 보여 풍속문화를 건전케 하여야 한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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