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공론] 사람의 향기

  • 문화
  • 문예공론

[문예공론] 사람의 향기

홍승표 시인

  • 승인 2021-04-29 10:25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난 냄새를 맡지 않는다. 난 개가 아니다." '브래드 피트와 무슨 얘기를 나눴고, 그에게서 어떤 냄새를 맡았나?'라고 한 어느 외신 기자의 황당한 질문에 배우 윤여정은 담담하게 이렇게 답했지요. 외신들과 참석자들은 "격이 떨어지는 질문에 대한 멋진 한 방"이었다며 환호했습니다. 연기 인생 50년이 넘은 일흔 넷, 적지 않은 나이에 한국인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그녀의 인생연륜에서 우러나오는 향기는 사람들을 매료시켰지요. 그녀는 수상소감에서 "브래드 피트! 나이스 투 미츄! 우리가 영화 찍을 때 어디 있었나. 만나게 돼 영광이다"라는 농담으로 시작해 "진심이 통하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요즘 세상은 진심이 안 통하는 세상"이라는 뼈 있는 말과 함께 "조연상을 수상한 건 조금 더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겸손함도 잃지 않았지요.

"먹고 살기 위해 절실하게 연기했다. 대본이 곧 성경 같았다"는 말은 묵직한 울림을 주었습니다. 그녀의 넉넉한 몸짓과 유머 넘치는 말은 이를 우리 모두에게 힘이 되었고 한국인에 대한 호감도 그만큼 커졌을 것입니다. "한국 영화사라는 거창한 잣대를 대기 보다는, 윤여정 선생님 개인의 승리라는 생각이 든다"는 봉 준호 감독의 말이 매우 적절하고 공감이 드는 이유이지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내일 아침까지 축하주를 마시겠다"는 봉 감독의 수상소감이 짙푸른 숲에서 풍기는 강렬한 향기였다면 "아카데미가 전부인 것도 최고의 순간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모두 최고가 되려고 그러지 맙시다. 최중만 되면 되잖아. 다 동등하게 살면 안 되나요?"라는 그녀의 수상소감은 곱게 물든 단풍 숲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기였습니다.

공직을 은퇴하고 이순(耳順을 넘기면서 '현직에 있을 때보다 편하고 넉넉해 보인다'는 말을 들을 때가 있지요. 돌아보니 일에만 파묻혀 살다보니 마음의 여유가 없었는데 백수로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으니 편하고 사람냄새가 생겨난 듯합니다. 사람은 저마다 향기가 있는데 그 향기는 몸에 뿌리는 향수와는 다르지요. 뿌린 지 얼마 후면 사라지는 그런 냄새가 아닙니다. 내재해 있는 품성과 살아오면서 쌓은 내공에서 풍기는 좋은 냄새. 이를 분위기니 아우라니 포스니 여러 가지로 표현하지요. 무엇보다 삶의 철학이나 가치관이 용해되어 깊이 잠겨 있다가 말 한마디나 행동 하나에 묻어 나오는 품격의 다른 이름일 것입니다. '난의 향기는 천리를 가고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蘭香千里 人香萬里)'는 말도 이를 대변하는 명구(名句)가 아니겠는지요.

오랫동안 알고 지냈으나 매번 만나도 심드렁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 번 만났는데도 또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끌리는 게 있다는 건 그에게 인간적인 매력과 향기가 있어서일 텐데,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되지요. 가진 게 많다고, 고위직이라고, 속칭 가방끈이 길다고 좋은 향기가 나는 건 아닙니다. 더 노골적으로 말해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가 품격을 좌우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지요. 올 곧은 삶의 철학과 가치관으로 한결 같이 언행일치를 실천하려는 이, 몸에 밴 절제력으로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이, 정의롭지만 그것을 구호처럼 내세우지는 않는 이, 욕심은 있되 욕망으로 나아가지는 않는 이, 그런 사람에게서 향기가 풍기는 법입니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다'는 가르침이 있지요. '가까운 한 사람을 기쁘게 하면 먼 곳에서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는 말도 있습니다. 늘 배운다는 자세, 늘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얘기겠지요. 참다운 인성과 품격을 가진 사람에게선 사람다운 향기가 저절로 풍겨날 것입니다. 거창하게 생각할 건 없는 일이지요. 허물없이 만나고 삶의 기쁨이나 애환을 나누고 싶은 사람, 그런 사람이 향기로운 사람이라는 생각입니다. 사람의 향기는 오래 가꾸고 익어갈수록 넉넉해지는 법이지요.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인가? 나는 누군가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인가?' 끝없이 화두를 던지며 살아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홍승표 시인

홍승표 시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유성 장대B구역 재개발 정비사업 '순항'
  2. 매출의 탑 로쏘㈜, ㈜디앤티 등 17개 기업 시상
  3. 국정 후반기 첫 민생토론회 위해 공주 찾은 윤석열 대통령
  4. 소진공, 2024 하반기 신입직원 31명 임용식
  5. 세종충남대학교병원, 세종권역 희귀질환전문기관 심포지엄 성료
  1.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 시작
  2. 정관장 'GLPro' 출시 한 달 만에 2만세트 판매고
  3. 한밭새마을금고, 'MG희망나눔 사랑의 김장 나누기' 행사 진행
  4. [긴박했던 6시간] 윤 대통령 계엄 선포부터 해제까지
  5. 금성백조, 사랑의 온도탑 제막식서 1억 5000만 원 기탁

헤드라인 뉴스


‘계엄 블랙홀’로 정국 소용돌이… 충청권 현안사업·예산 초비상

‘계엄 블랙홀’로 정국 소용돌이… 충청권 현안사업·예산 초비상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해제 후폭풍이 거세게 몰아치면서 정기국회 등 올 연말 여의도에서 추진 동력 확보가 시급한 충청 현안들에 빨간불이 켜졌다. 또 다시 연기된 2차 공공기관 이전부터 대전 도시철도 2호선 트램 건설, 충남 아산경찰병원 건립, 다목적 방사광 가속기 구축, 중부고속도로 확장까지 지역에 즐비한 현안들이 탄핵정국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기 전 지역 정치권의 초당적 협력과 선제적 대응이 절실하단 지적이다. 3일 오후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4일 새벽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 가결 등 밤사이 정국은 긴박하게 돌아갔..

대전시, 연말에도 기업유치는 계속된다… 7개 사와 1195억원 업무협약
대전시, 연말에도 기업유치는 계속된다… 7개 사와 1195억원 업무협약

대전시는 4일 시청 중회의실에서 국내 유망기업 7개 사와 1195억 원 규모 투자와 360여 개 일자리 창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날 협약식에는 이장우 대전시장과 정태희 대전상공회의소 회장을 비롯해 ▲㈜아이스펙 한순갑 대표 ▲㈜이즈파크 정재운 부사장 ▲코츠테크놀로지㈜ 임시정 이사 ▲태경전자㈜ 안혜리 대표 ▲㈜테라시스 최치영 대표 ▲㈜한밭중공업 최성일 사장 ▲㈜한빛레이저 김정묵 대표가 참석했다. 협약서에는 기업의 이전 및 신설 투자와 함께, 기업의 원활한 투자 진행을 위한 대전시의 행정적·재정적 지원과 신규고용 창출 및 지역..

야 6당,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제출… 빠르면 6일 표결
야 6당,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제출… 빠르면 6일 표결

야 6당이 4일 오후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빠르면 6일부터 표결에 들어갈 수도 있으며 본회의 의결 시 윤석열 대통령은 즉시 직무가 정지된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은 이날 오후 2시 43분쯤 국회 의안과를 방문해 탄핵소추안을 제출했다. 탄핵소추안 발의에는 국민의힘 의원을 제외한 6당 의원 190명 전원과 무소속 김종민 의원(세종갑)이 참여했다. 탄핵안에는 윤 대통령이 12월 3일 22시 28분 선포한 비상계엄이 계엄에 필요한 어떤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음에도 헌..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철도노조 파업 예고에 따른 열차 운행조정 안내 철도노조 파업 예고에 따른 열차 운행조정 안내

  • 야 6당,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제출… 빠르면 6일 표결 야 6당,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제출… 빠르면 6일 표결

  • 계엄령 선포부터 해제까지… 충격 속 긴박했던 6시간 계엄령 선포부터 해제까지… 충격 속 긴박했던 6시간

  • `계엄 블랙홀`로 정국 소용돌이… 2차 공공기관 이전 등 충청현안 초비상 '계엄 블랙홀'로 정국 소용돌이… 2차 공공기관 이전 등 충청현안 초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