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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초등학교 입학전 웬만한 한글은 다 떼지 않나?" 고개를 갸웃하는 엄마들도 있으리라. 실제 학부모 인식조사에서 미취학(5~7세) 학부모 1000명 중 87.2%가 취학 전에 자녀에게 한글 교육을 했다고 응답했다. 굳이 선행학습 하지 않아도 초등 1학년 1학기 교육과정만으로 한글을 충분히 배울 수 있다고 강조하는 교육부 방침과 엇박자다.
초등 1학년 교사들은 학생 간 한글 해득수준 격차로 수업이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읽고 쓸 순 있지만 교과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실질적 문맹'도 많다는 설명이다. 단어에 대한 이해나 상황에 대한 공감대가 없다면 읽어도 문장의 뜻은 모를 수밖에 없다. 독서와 체험을 통해 얻는 지식이 아닌, 주입식 조기 교육이 불러온 참담한 현실이다.
"난독증이세요?" SNS와 유튜브 채널 등 온라인 공개 게시물에는 이런 댓글이 눈에 띈다. 흐름에 맞지 않거나 글의 논리와 대치되는 댓글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쓰인다. 같은 것을 읽고도 해석이 달라지는 '소통 오류'일 뿐인데, 난독증이란 공격을 받으면 키보드 배틀(battle)이 벌어지기도 한다. 글의 핵심은 산으로 가고 행간의 함의까지 꼬리를 무는 공멸이다.
난독과 문맹은 엄연히 다르다. 난독증은 듣고 말하는 데는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단어를 읽거나 글자를 인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장애의 한 유형이다. 세종교육청의 초기 문해력 지원 방안을 살펴보면, 1차 진단 결과 난독 학생의 경우 전문기관과 연계해 심층진단·병원 연계치료 등을 진행한다. 난독증은 지능이나 환경과는 관련이 없다. 에디슨이나 톰크루즈도 난독증으로 알려지며, 외려 천재성을 발휘하기도 한다.
반면, 글을 읽거나 쓸 줄 모르는 경우를 문맹(배우지 못한경우) 혹은 비문해라 지칭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 비문해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이지만 실질 문맹률은 가장 높다. 또 우리 국민의 문맹률은 1% 이하로 세계에서 가장 낮지만, 실질 문맹률은 75%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전문가들은 실질적 문맹의 원인으로 입시 위주의 암기식 교육, 긴 노동시간과 독서율 저하, 어려운 한자어 사용 등을 꼽는다. 이 같은 환경은 공감대를 낮추고, 소통의 오류를 키우기 때문이다.
위드 코로나 시대, 교통과 금융·배달·학습·취미활동 등 일상이 한 손에 스마트하게 잡히는 요즘, 인터넷과 기계조작에 서툰 어른에겐 '디지털 문맹'이란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이른바 '신 문맹사회'다.
잘 벼려진 칼과 같은 어른들의 봉건적 사고는, 새로운 언어와 변화를 가벼운 유행으로 베어버리기 쉽다. 받아들일 기회조차 없었거나, 공감하기엔 취향이 너무 다르거나…. 이런저런 이유가 있을 테다.
직장인 A씨가 말했다. "도서관과 극장을 찾지 못한 1년, 전자책과 유튜브 10분 영상에 길들고 보니 종이책을 읽는 게 뜨악하다. 나는 현대판 문맹이 되고 있나."
주부 B씨도 고백한다. "설명서 글귀를 이해 못 해 의자조립 하나에도 수 시간씩 걸리고, 패스트푸드점 키오스크(터치스크린 방식 무인단말기)를 이용하며 진땀을 흘렸네요."
한글을 일찍 떼도 실질적 문맹이 될 수 있듯, 똑똑했던 청년도 나이가 들면 현대판 문맹이 될 수 있다. 끊임없는 배움과 올바른 독서, 무엇보다 공감의 학습이 필요한 세상이다.
/고미선 세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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