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주류와 비주류가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고, 즐기고, 선호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관심권 밖에 있고, 그다지 즐기지도, 좋아해 주지도 않는 것이 있습니다. 흑인 인권 문제를 다룬 이 영화는 주류가 아닙니다. 그러나 세상을 반영하거나 들여다보게 하는 영화의 중요한 역할을 감당합니다. 대다수를 위한 재미와 즐거움, 쾌감은 아니지만 인간 사회의 진실과 비애, 희생과 열정 등을 발견하게 합니다. 더불어 저예산 독립영화, 다양성 영화, 예술 영화 등 비주류 영화들의 존재 가치와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메시아로 이 땅에 온 예수와 그를 팔아넘긴 가룟 유다를 모티프로 하는 이 작품은 스무 살 남짓한 흑인 운동가의 삶과 죽음을 그립니다. 영화는 아무 문제 없이 매끈하게 봉합된 듯 보이는 세상의 이면에 실은 심각한 균열과 모순, 끊임없는 갈등과 투쟁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마치 거대한 지구 표면 아래 엄청난 지각 변동과 판의 충돌, 마그마의 꿈틀거림이 있듯이 말입니다. 주류 백인 사회의 권력과 제도가 어떻게 비주류 흑인 사회의 움직임을 통제하고 억압하는지 이 영화는 잘 보여줍니다. 그리고 통제와 억압을 뚫고 세상을 바꾸려 하는 흑인 운동가들의 분투가 있습니다. 미연방수사국의 요원 미첼과 그의 상관인 에드가 후버, 흑표당 시카고 책임자인 프레드 햄프턴과 그의 동료들. 그 중간에 정보원으로 매수된 윌리엄 오닐.
오닐의 스파이 노릇과 햄프턴의 희생. 스토리는 성경과 같습니다. 영화는 혁명이 단지 거대한 결과가 아니라 보이지는 않지만 계속되는 과정의 연속임을 깨닫게 합니다. 메시아 예수에 대한 유명한 명제 'already but not yet'이 떠오릅니다. 예수로 인해 하늘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처럼 햄프턴이 꿈꾸던 혁명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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