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공론] 엄마가 남겨준 쑥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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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공론] 엄마가 남겨준 쑥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

나영희/수필가

  • 승인 2021-04-27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들판에 앉아서 쑥을 캐는데 등에 내리쬐는 햇살이 따사롭다. 엄마의 등에 햇살이 부딪혀 너른 대지로 뻗어 나간다. 매서운 추위에 바들바들 떨며 손톱처럼 조그마한 게 제법 커져서 힘들어도 캘만 했다.

엄마와 나의 손놀림이 바빠지면서 바구니는 조금씩 차오르기 시작했다. 쑥을 캐면서 나누는 정다운 이야기들, 사소한 가족들의 이야기가 행복하다. 엄마와 함께라서 더욱 행복했다. 여린 쑥을 캐가면 엄마는 된장을 넣고 들깨를 갈아서 쑥국을 끓여주실 것이다.

이른 봄에 먹는 쑥국은 정말로 별미다. 쑥은 따뜻한 성질이 있어서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비타민과 무기질도 풍부해 위장에도 좋고 혈액순환도 도우며, 피부병 등 여러 가지로 좋다.

우리 형제는 7형제인데 그중에 나는 6번째고 혼자만 종종 배가 아팠었다. 항상 튼튼하다고 생각했고 시골에서 친구들과 뛰어놀기도 잘했는데 중학교를 갓 입학했을 무렵 어느 날 또 배가 아파서 아버지 친구가 의사로 계시는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다.



그런데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고 천성이 위장이 약하단다. 어떤 음식이든 가리지 않고 잘 먹었기에 위장이 약하다는 소리가 이상하게 들렸었다. 과식은 안 좋은데 과식도 잘했던 거 같다. 커서도 손발이 차갑고 소화가 잘 되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는 봄만 되면 항상 맛있게 먹었던 쑥국. 종종 해먹 던 쑥 개떡, 쑥 절편, 쑥 전, 엄마가 내 위장이 안 좋아서 쑥을 더 가까이 하지 않으셨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나에게 직접 '너를 위하여 쑥국을 더 끓이는 거야' 하시지 않으셨지만 우리 집 식탁엔 쑥국이 잘 올라왔었다. 엄마의 숨겨진 사랑이 보이는 장면이다.

쑥은 단군신화에도 나오는 곰과 호랑이가 마늘과 쑥을 먹으며 100일을 버티는데 호랑이는 뛰쳐나가고 곰만이 버티고 남아 사람이 되었다는 개국 설화도 있다. 그 정도로 쑥은 마늘과 당근과 함께 3대 성인병 예방식물로 꼽힌다.

내가 어린 시절엔 하늘도 푸르고, 공기도 맑고 인심도 좋았다. 거의 모든 집이 설날엔 쑥 인절미를 했던 것 같다. 쑥을 말려놨다가 설에 떡을 많이 했는데 그 시절엔 거지들도 많았다. 명절이면 집 집마다 구걸을 다니는데 쑥 인절미를 많이 해서 쑥 인절미도 나누어 주었었다. 말랑말랑 인절미가 얼마나 맛있던지 노란 고물이 떡 아래 남아 있으면 고소한 맛에 취해 떡을 고물 있는 곳에 묻혀서 조금이라도 맛있게 먹으려고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 같다.

왜 지금보다 그 시절의 음식이 더 맛있었는지 모르겠다. 입맛이 달라진 것인지 음식이 달라진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내 나이가 많아지고 세월이 흐르면서 내 입맛이 달라졌을 거라 생각한다. 내 나이 육십이 넘은 이 시점에도 봄이 되어 어린 쑥을 보면 엄마와 함께 뜯던 쑥이 생각나고 그래서 나도 쑥을 뜯는다. 엄마가 끓여줬던 방식대로 멸치 육수물에 된장으로 간을 하고, 마지막에 들깨 가루를 넣는다. 봄을 먹는 기분이라 그런지 항상 맛있다.

약간 늦게 쑥을 캤을 땐 쑥즙을 짜버리고 끓이면 된다.

이번에 시골에 갔을 때 바닷가에 쑥이 좋게 보이길래 그냥 가기 아까워서 딸과 함께 끝부분 어린 잎만 두 주먹 가득 뜯어 왔다. 시골에서 쑥국을 한번 끓여 먹고 대전에서 또 끓여 먹으며 손자에게 밥을 말아서 줬더니 밥 한 그릇을 뚝딱 먹는다. 그래도 한번 먹을 양이 남았는데 이제는 쑥 전을 부쳐 먹어야겠다.

딸도 나이를 먹어가며 나와 함께 했던 추억 중에 쑥을 캐던 장면도 들어있을 것이다. 손자는 바닷가에서 돌멩이를 떠들며 게를 잡고, 나는 힘들어서 쑥을 뜯고 딸도 함께 와서 돕고, 날씨는 따사롭고 미풍은 살랑살랑.

그러한 추억을 나는 딸에게 남겨 놓는다. 엄마가 나에게 들판의 추억을 남겨 놓았듯이…….

나영희/수필가

나영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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