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4월 대전 중구 목동 대전을지병원 개원식 모습. (사진=을지재단) |
"환자가 필요한 곳에 병원을 세우라"
1981년 4월 대전 중구 목동에 을지대학병원의 전신인 을지병원이 17개 진료과에 218병상 규모로 세워졌다.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된 서울 강남개발에 바람을 타고 종합병원들이 강남에 제2병원을 진출할 때 을지재단은 인구 100만 명이 채 되지 않았던 대전에 보건의료 씨앗을 심었다. 당시 대전에는 충남대병원이 개원한 지 9년째였고, 카톨릭중앙의료원과 자매결연을 맺은 대전성모병원이 종합병원 인가를 받은 지 1년째 되던 척박한 환경이었다. 을지재단은 서울 대신 대전을 새 병원 건립대상으로 선정하고 배재학원이 종합대학 확장을 위해 공매에 내놓은 중구 목동의 부지를 매입했고 1980년 2월 착공하는 등 발빠르게 추진했다.
'을지재단 60년사'는 당시 박영하(1927~2013) 설립자의 철학에 대해 "지방의 열악한 의료환경을 생각할 때 당연히 환자가 필요로 하는 곳에 병원이 서야 한다는 신념이었다. 그것이 강남 진출 아닌 대전으로 이끌었고, 의료지방화 시대를 열어나갔다"라고 설명했다. 을지재단과 병원을 세운 고 박영하 설립자는 서울대 의과대를 졸업 후 서울대병원 의사로 실습 근무 중 한국전쟁을 맞아 의용군을 조직해 군의관으로 평양탈환작전에 참전하는 등 6년 동안 부상병을 치료하는 군의관을 지냈다. 간호장교로써 함께 부상병을 살핀 전증희 여사와 결혼해 1956년 서울 중구 태평로에 '박산부인과의원'을 시작으로 을지로3가에 박영하 산부인과를 개원했다. 1967년 박영하 산부인과는 종합병원으로 승격해 '을지병원'이라는 오늘날의 이름을 갖고 재단법인 을지병원유지재단을 설립해 공익법인체로 전환했다.
1980년대 대전을지대병원 전경. (사진=대전시) |
을지재단은 앞서 1972년 의과대학 설립신청을 제기할 정도로 학교설립에 열망이 컸다. 병원발전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진료뿐만 아니라 연구 및 교육기능이 수반돼야 한다는 측면에서 교육기관 설립은 을지재단이 공을 들이고 있는 부분이었다. 1983년 서울보건전문대학을 전격 인수한 을지재단은 1996년 12월 대전을지병원에 의과대학 설립인가를 정식으로 획득했다. 1956년 박산부인과에서 시작한 을지재단이 40년간 간직한 의과대학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박준영 을지재단 회장은 "1996년 7월 정부의 의대설립준칙주의가 발표되고 우리로선 다시없을 기회로 삼아 뛰었다"라며 "결국 대학설립 인가를 받고 40여 년을 손꼽아온 성취에 자부심이 컸다"라고 '을지재단 60년사'에 남겼다. 대전과 충남에 필요한 의료인을 양성할 수 있도록 인가된 을지대의과대는 1997년 3월 의예과 신입생 제1회 입학식은 대전시 시민회관에서 열렸다. 대전시민회관을 내주고 홍선기 시장이 참석해 축하할 정도로 을지대의과대는 지역 의료발전의 전환점으로 주목 받았다. 이때 대전을지병원은 을지대학 부속병원으로 전환됐다.
개원 40주년을 맞은 대전을지대병원. |
경기도 의정부에 의정부을지대병원을 새롭게 개원하면서 목동 을지대에 간호학과와 임상병리학과 등을 의정부캠퍼스로 이전하는 등 대전에 을지재단의 의료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관심도 요구된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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