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세화 디지털룸 1팀 기자 |
시종은 "정원 나무 위에 매미가 있었습니다. 매미는 높은 곳에서 노래 부르며 이슬을 먹느라 사마귀가 뒤에 있는 것을 몰랐습니다. 사마귀는 몸을 웅크린 채 매미를 잡느라 그 옆에 참새가 있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참새는 목을 늘여 빼 사마귀를 쪼아 먹으려다 아래에 탄환이 있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 셋은 이익을 얻으려다가 그 뒤에 오는 어려움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시종의 말에 깨달음을 얻은 수몽은 곧바로 군사를 거뒀다. 고사성어 '당랑포선(螳螂捕蟬)'의 유래가 된 이야기다. 사마귀가 매미를 잡는 데 온 정신이 팔려 뒤에서 참새가 자신을 노리고 있음을 모른다는 뜻으로 눈앞의 이로움만 쫓느라 자신에게 닥쳐올 재난을 생각하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지적한다.
우리에게 한 치 앞도 볼 수 없게 하는 건 이기심에서 비롯된 본능 때문일 것이다. 집값은 내려가야 하는데 내 집은 올라야 하고, 비정규직 차별이 없어지길 바라지만 나는 정규직이어야 하고, 중소기업을 살려야 하지만 난 대기업에 다녀야 하고, 최저임금이 마냥 올라선 안 된다는 걸 알지만, 내 월급은 올라야 한다. 그렇게 해야 하는 건 알지만 내가 그러긴 싫고, 너는 그래도 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는 우리의 이기심은 잠을 자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불현듯 출몰한다.
이기(利己)는 개체성을 지닌 모든 바운더리에서 나타난다. 문화예술계도 그렇다. 작품이나 단체의 순수성과 상업성을 운운하며 편견으로 물든 잣대를 들이대고, 시대를 앞선다는 예술에는 찬사를 아끼지 않지만, 시대착오적인 예술에는 비난과 배척을 서슴지 않는 등 편 가르기에 여념이 없다. 내가 먹지 못하는 파이는 존재할 수 없고, 내가 알지 못하는 이야기는 인정할 수 없는 식의 그릇된 생태계 형성은 결국 향유권을 쥔 시민들의 희생으로 이어진다. 말 많고 탈 많은 동네에서 진정한 존립을 원한다면 사욕에 찌든 개인의식을 '공적 의식'으로 전환했을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본래부터 '내 것'은 없다. 다만 우리의 생각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한세화 기자 kcjhsh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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