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선덕여왕의 모란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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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선덕여왕의 모란 향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21-04-23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자주 하는 이야기다. 요즈음 꽃소식은 SNS가 가장 빠르다. 생중계되다시피 전국상황이 속속 전해온다. 계절이 어디쯤 오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예년보다 꽃소식이 빠르다. 아침에 컴퓨터 켜니 모란이 활짝 폈다. 사진작가가 농장이 꽃 대궐이라며 꽃 그림 서너 장 올렸다. 벗이 많은 전직 기자는 작약과 함께 모란꽃, 영랑생가에 세워져 있는 김영랑시비, 간단한 관련 글 첨부하여 봄소식 전해준다. 덕분에 기분 좋게 시작하는 하루다.

모란은 꽃이 붉어 목단(牧丹)이라고도 부른다. 그렇다고 붉은색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백, 홍, 담홍, 주홍, 농홍, 홍자, 자, 황색 등 다양하다. 초가에 어울리지 않게 화사한 자태 뽐내며 시골집 뜨락마다 있었던 기억이다. 부귀영화가 상징이어서 많이 가꾸지 않았나 싶다. 꽃말도 부귀이다. 꽃 중의 꽃으로 화왕이라고도 부른다. 아름답고 화려하다. 복스럽고 덕 있는 여인의 상징이기도 하다. 부귀와 공명을 기원하는 시서화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일반적으로 여성 의상에도 많이 그려졌으며, 특히 신부 예복인 원삼이나 활옷에 수놓아 입었다. 병풍 또는 그림으로 집안에 비치하기도 하였다.

원산지가 중국으로 신라 진평왕 때 전래 되었다고 한다. 아는 바와 같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실린 기사 때문이다. 서로 약간 다르긴 하지만, 중국 당 태종이 모란꽃 그림과 모란 씨를 보내왔다 하지 않았는가? 삼국유사에는 당 태종이 붉은색, 자주색, 흰색 3가지 색으로 그린 모란꽃과 씨 석 되를 보내왔다 전한다. 보다 구체적이다.

내친김에 삼국유사 신라본기 선덕왕지기삼사에 전하는 이야기를 좀 더 살펴보자. 거의 가필하지 않았다. 첫 번째 이야기는 당 태종이 보내온 모란꽃 그림 이야기다. 진평왕의 딸 만덕이 당나라에서 보내온 모란꽃 그림과 꽃씨를 보고 말하였다. "이 꽃은 비록 아주 아름답기는 하지만 반드시 향기가 없을 것입니다." 임금이 웃으며 그것을 어찌 아느냐고 묻자. "꽃을 그렸으나 나비와 벌을 그리지 않았기에 그것을 알았습니다. 무릇 여자가 뛰어나게 아름다우면 남자들이 따르는 법이고, 꽃에 향기가 있으면 벌과 나비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이 꽃은 무척 아름다운데도 그림에 벌과 나비가 없으니, 이것은 분명히 향기가 없는 꽃일 것입니다"라고 답한다. 꽃씨를 심었더니 과연 말한 바와 같았다.



두 번째 이야기는 개구리 울음소리로 전쟁 징조를 알아챘다는 이야기다. 개구리가 옥문지(玉門池)에서 울자, "개구리의 성난 듯한 눈은 병사의 모습이다. 내가 일찍이 서남쪽 변경에 지명이 옥문곡(玉門谷)이라는 곳이 있다고 들었는데, 혹시 이웃 나라 병사가 그 안에 숨어 들어온 것은 아닐까 의심스럽다." 하며 장군 알천(閼川)과 필탄(弼呑)에게 명하여 병사를 이끌고 가게 한다. 과연 백제 장군 우소(于召)가 독산성(獨山城)을 기습하려고 무장한 병사 5백 명을 이끌고 와서 그곳에 숨어있었다. 알천이 습격하여 그들을 모두 죽였다.

세 번째 이야기는 스스로 최후를 예지했다는 내용이다. 평소 "짐은 모년 모월 모일에 죽을 것이니, 나를 도리천(?利天) 속에 장사 지내라" 하였다. 그곳이 어딘지 물으니, "낭산(狼山) 남쪽이다"라 한다. 그날에 이르자 왕이 과연 세상을 떠났다. 여러 신하가 낭산의 남쪽에 장사 지내 주었다. 10여 년이 지난 뒤 문무대왕(文武大王)이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왕의 무덤 아래에 세웠다. 불경에 사천왕천(四天王天)의 위에 도리천이 있다고 하였으니, 그때야 대왕이 신령하고 성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모두에 실려있어 꽤 유명했던 설화로 보인다. 뛰어난 식견, 예지력, 지혜를 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다분히 인위적이다. 모란이 향기가 없다는 것도 맞지 않는다. 오히려 향기와 꿀이 많아, 벌 나비가 많이 꼬인다. 왜 그랬을까?

선덕여왕은 기록에 남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이다. 생년 미상이나 647년에 세상을 떠났다. 신라 27대 왕으로 632년부터 647년까지 15년 동안 재위했다. 재위하자마자 흉년이 들어 633년 1년간 조세를 면제하는 등 선정을 베풀고, 심각한 난국에도 외교 중심인 한강 유역을 지켜내 삼국통일 기반을 닦았다는 긍정적 평가가 있다. 황룡사 9층석탑, 분황사, 영묘사 등 재위 기간에 25개 사찰을 건립하였다. 각종 수많은 불사로 불교계에서는 꽤 우호적이다.

반면, 무능한 암군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첨성대와 불사 등 무리한 토목공사로 국력이 탕진되어 백성의 원성이 높았다. 백제에게 40개 이상의 성을 빼앗기는 등 국방력 악화로 나라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화백회의에서 추대받았으나 즉위 전부터 왕족과 귀족의 반발에 부딪힌다. 칠숙(柒宿)과 석품(石品)의 반란이 있었으며, 말년에는 비담의 난에 시달린다. 게다가 당 태종은 '여왕 폐위론'으로 조롱까지 한다.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오래 지속 되어 온 남성 중심 문화의 반발이라 보기도 한다. 재위 내내 내우외환에 시달린 군주이다.

반발 무마와 난국 타개 시도의 하나로 많은 설화가 유포되었다는 시각이 있다. 국난에 봉착하여 왕권 강화, 대민 통제, 민심 안정, 내부결속 강화가 필요하지 않았나 주목한다. 설화를 길게 전한 이유가 있다. 지금은 그러한 설화가 통하지 않는 시대이다. 위기를 권모술수로 덮을 수 없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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